나에게 그 모습만큼이나 아리따운 선물과 가르침을 준 요리.
누군가 나에게 지금 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프랑스라고 답한다. 프랑스가 나의 꿈의 나라가 된 것은 아주 오래 전인, 초등학교 저학년 때이다. 그때는 그저 '에펠탑'이라는 것이 그 시절 내가 아는 세계 문화유산 중에 가장 예뻐 보인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프랑스라는 나라를 가장 가고픈 나라로 정하게 되었다. 그 후, 아쉽게도 지금까지 아직 프랑스에 두발을 딛고 서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대학생이 된 후, 정해진 개수만큼의 교양 강좌를 들어야 했던 나는 '프랑스어' 강좌가 있는 것을 보자마자 신청했다. 그때의 나는 프랑스어라고 하면 'Bonjour' 밖에 몰랐지만, '부슝부슝'하는 멋진 발음이 많은 프랑스어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궁금한 마음에 덜컥 신청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어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나에게 더 아름답고 빛나며 넓은 세계를 선사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오랜 기간 프랑스어를 진심을 다해 배웠고, 자연스레 그 나라의 문화에도 매료되게 되었다. 특히, 프랑스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미식 아니겠는가. 그리고 요리하고 먹는 것에 진심이며, 프랑스를 이리도 좋아하는 내가 프랑스 미식에 관심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지. 아니, 그 세계가 너무나 궁금해서 안달 날 지경이다. 나의 20대 버킷 리스트 중에,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워보는 것이 있기도 할 정도이다. 지금 내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프랑스로 떠나 내가 동경하던 그 세계에 가 있지는 못하지만, 나의 마음 한편에는 이렇게 '프랑스 미식'이 자리 잡고 있게 되었다.
얼마 전, 나는 '프렌치 수프'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도 없었고, 영화라는 것에 큰 흥미도 없는 나였지만, 우연히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는 반드시 이것은 영화관에서 보겠노라고 다짐했다. 마침, 운이 좋게도 인스타그램에서 @metizen_official 이 주최한 댓글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티켓을 제공받아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영화에는 프랑스 전통 요리들이 한가득 나왔다. 요리사 '외제니'와 '도댕'의 손길로부터 그 멋진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까지를 참으로 아름답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식탁이 아닌, '외제니'와 '도댕'이 있었던 주방이라는 그 자리에서 그들이 하듯이 마술을 부리는 나의 모습도 상상해 보았다.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를 본 후로 나의 마음속에서 '프랑스 미식'의 자리는 더 커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프랑스 요리를 직접 만들어보고픈 강한 욕구가 생겼다. 그리고 일주일 후였을까, 요즘 내가 푹 빠져있는 책인 이지은 작가님의 <Merci Croissant>을 새벽에 읽다가 내 눈에 하나의 프랑스 전통 요리가 포착되었다. 바로 'Chou Farci [슈 파르시]'. 속이 꽉 찬 양배추라는 뜻을 가진 이 이름을 보자마자 '프렌치 수프'에서 나온 양배추 요리가 머릿속을 스쳤고, 양배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오전 5시에 '오! Chou Farci!'라고 조용히 외쳤다. 그렇게 나의 프랑스 요리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Chou farci를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우선, 우리말로 '양배추 말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직역하면 '속이 찬 양배추'라는 이 요리의 의미를 '말이'라는 단어가 담아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이 핑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난 이 요리를 프랑스 감성을 가득 담은 'Chou farci [슈 파ㅎ씨]'라고 지칭하려 한다. 또, 검색해서 나오는 이미지들을 살펴보면, 다진 고기와 채소를 토마토소스에 볶아 만든 빨간 속이 양배추 안에 가득 차 있는 것들을 주로 보게 된다. 하지만, 꼭 이대로 하리란 법이 있나! '속이 찬 양배추'이면 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나의 버전으로 바꾸어 보았다. 99프로 채식 주의자인 나는 (아주 가끔 해산물을 먹는다.) 야채가 주인공이 되는 속을 만들었다. 더불어, 크림소스를 좋아하는 나는 처음으로 직접 비건 크림을 만들어 나의 chou farci에 맛을 주었다. 이름하여 듣기만 해도 향긋한 '로즈메리 두유 크림'이다. 로즈메리 두유 크림과 나의 chou farci의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로즈메리 두유 크림>
1. 아몬드가루 10g + 찹쌀가루 5g을 코코넛오일과 함께 약불에서 살살 저어준다.
2. 3분쯤 저어주고 두유 190ml + 코코넛밀크 50ml를 부어 함께 저어준다.
3. 여기에 로즈메리 잎(작은 잎 10~15개 정도로 충분함)과 소금을 소량 넣고 약간 점성이 생길 때까지 저어준다.
4. 이제 레몬즙을 조금 뿌리고 조금 더 저어주다가 불을 끊다. (선택사항이지만 레몬의 상큼함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5. 이제 냄비를 들어 올리고 식히면서 저어주면 더 점성이 생기게 된다.
6. 깨끗한 유리 용기에 담으면 완성!
<Chou farci>
1. 다진 마늘과 함께 원하는 야채들과 으깬 두부(선택 사항)를 볶아준다. (표고버섯과 양파를 강력히 추천한다.)
2. 그동안, 양배추의 큰 잎 두 장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데쳐준다.
3. 볶던 야채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로즈메리 두유크림 두 스푼과 뉴트리셔널 이스트(생략 가능) 그리고 후추를 넣고 약불에서 5분 정도 볶는다.
4. 이제, 데친 양배추 잎 안에 야채 볶음을 넣어 보자기를 감싸듯 감싸준다.
5. 에어프라이어나 오븐 전용 용기(빵틀을 사용하였음)에 이것을 담고 표면에 기름을 미량 뿌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서 굽는다. (나는 에어프라이어에서 160도에 10~15분쯤 구웠다.)
6. 이제, 그릇에 예쁘게 올려 남은 두유 크림을 천천히 뿌려주면 완성이다.
사실, 그냥 두유 크림을 만들다가 문득 저번에 얼려서 보관해 둔 로즈메리 잎이 떠올랐는데, 왠지 괜찮을 것 같은 느낌에 살짝 넣어보았다. 로즈메리의 향긋함과 두유의 고소함의 만남은 마치 고향 친구들과의 오랜만의 만남 같았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서로에 대한 반가움으로 그 주위까지 행복의 향으로 가득해졌다랄까! 이 크림을 처음 맛본 순간, 정말이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집안에 로즈메리 향이 퍼졌고 나의 마음까지 향긋함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야채의 조합, 소스의 맛의 조화까지 신중하게 고민해 가며 정성껏 그리고 천천히 만들어 완성시킨 나의 첫 chou farci를 바라보았을 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이다음 날, 친구를 집에 초대했었는데, 친구에게 이 요리를 맛 보여줄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언젠가 프랑스에서 chou farci를 만나는 기분 좋은 상상도 해본다. 혹은, 그곳에서 나의 chou farci를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맛 보여주는 날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한편, 이전에도 나는 버섯, 애호박, 양파 그리고 양배추라는 재료로 참 많은 요리를 해서 먹었다. 대부분의 경우,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다 같이 볶다가 소금이나 간장, 그리고 된장 등 그때그때 떠오르는 맛으로 간을 한다. 그렇게 만든 야채 볶음을 상추에 싸 먹으면 참으로 맛있다. 하지만, 대학원생인 나에게 요리는 나의 업무가 아님을 알았기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 요리하고 밥을 잘 챙겨 먹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었기 때문인지, 또는 거의 혼자 먹어서 더 그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입 한입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매번 빠르게 씹고 뱃속으로 넘기기에 바빴던 것 같다. 그저 간단하게 후다닥 만들 수 있으며 갖가지의 야채가 들었기에 건강할 것이고, 전체적인 조화도 꽤나 괜찮았기 때문에 이러한 요리를 즐겨 해 먹었다. 각 야채가 나의 밥상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이 있었는지, 그래서 이 애호박, 버섯, 양파 그리고 양배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렇지만 Chou farci를 만들고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며 깨달았다. 아, 이때까지 내가 밥상을 잘못 대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크나 큰 감사함을 느꼈다. 이 야채들이 땅에서부터 새싹을 맺고 나의 밥상까지 오기까지 거친 수많은 손길들에게.
나의 chou farci와 함께한, 천천히 흘러간 어느 날의 한 끼는
나에게 '꿈의 나라의 미식'이라는 의미로 큰 행복을 선물해 줌과 동시에
내 앞에 놓인 이 한 접시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고마워, 나의 Chou Far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