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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Jun 28. 2024

옹기종기 미색(米色) 삼총사

나를 똑 닮은 두부 감자 그리고 팽이버섯

 미색(): 겉껍질만 벗겨  쌀의 빛깔과 같이 매우 엷은 노란색.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미색을 좋아한다. 즉, 우리가 흔히 '아이보리 색' 혹은 '옅은 베이지 색'이라고 말하는 색이다. 나의 옷장을 열면 거의 반 이상이 하얀 물감에 갈색 한 방울, 노란색 한 방울이 들어가 고운 미색을 띠는 옷들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색의 취향이 음식에 까지 적용된다니. 요즘 내가 푹 빠져있는 미색 삼총사가 있다. 두부, 감자 그리고 팽이버섯이다. 물론 이전에도 이 각각을 참 좋아했었다. 버섯 순이인 나는 새송이 버섯, 팽이버섯, 그리고 표고버섯 등을 주식으로 먹어 왔고, 또 채식 지향의 삶에는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부도 나의 냉장고에서 항상 한 자리를 차지하는 친구다. 그리고 감자의 포슬포슬함이 그리울 때 또는 얇은 감자칩의 짭조름하고 바삭함이 마치 약 올리듯 혀끝을 살짝 지나갈 때가 찾아오는데, 그럴 때 시장에서 제 멋대로 생긴 감자 한 봉지를 사서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와 감자 요리를 해 먹고는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 삼총사가 에어프라이어에서 만나 이루는 합작에 푹 빠져버렸다! 지금은 꽤나 다양한 변화를 줘서 조리하지만, 가장 처음 내가 눈을 번쩍할 수 있었던 레시피는 다음과 같았다. 특별한 양념이나 비법은 없는, 참 단순한 요리이다. 


1. 먼저, 키친 타월을 이용해 두부의 물기를 빼 준다. 

2. 그동안, 잘 삶아진 감자의 껍질을 벗겨 에어프라이어에 깐 종이 포일 위에서 깨끗한 컵의 아랫면으로 과감히 꾹 눌러준다.

3. 팽이버섯의 밑동을 툭 자르고, 붙어있는 부분을 손으로 떼어 에어프라이어에 살포시 놓아준다. 

4. 이제, 물기가 빠진 두부도 먹기 좋게 자르고 옆에 사이좋게 놓아주면 준비 끝이다. 

5. 그 위에 기름을 골고루 분사시켜 주고 약간의 소금과 후추를 톡톡!

6. 이제, 160도 정도에 대략 25분 정도 구워주면 완성!


에어프라이어가 조리를 완료했다는 명쾌한 '땡'소리가 나서 그 안을 열어보면 뽀얀 미색 삼총사가 황토색 삼총사로 변신해 있다. 지금 그 모습을, 그 냄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그릇으로 옮기기 전에 작은 감자 부스러기를 먹는다. 그 바삭함이란, 혼자 있어도 소리 내어 '으으음~' 하게 한다. 


    요즘은 이 삼총사 구이에 매일 조금의 변화를 준다. 팽이버섯을 그냥 굽지 않고 감자전분에 버무려 구우면 버섯 전이 완성된다. 또, 이 삼총사를 큰 그릇에서 과감히, 조몰락조몰락해서 반죽을 만들어 얇게 펴서 구우면 촉촉한 오믈렛 같은 감자전이 된다. 앗, 여기에 잘 익은 김치를 쏭쏭 썰어 넣으면 그야말로 초간단 김치 감자전이 되는 것이다. 크! 생각만 해도 배가 고파지는 것 같다. 이들의 변신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이들이 나에게 주는 행복과 놀라움은 어디까지일까! 

팽이버섯 전(좌), 삼총사로 만든 김치 감자전의 반죽(중간), 그리고 완성된 모습(우)


    내가 이 삼총사의 만남에 빠지게 된 것은, 시장에 햇감자가 나오기 시작할 때였다. 아직 햇감자의 놀라움을 몰랐던 그때의 나는 그저 감자를 사려고 했는데 마침 그것이 햇감자여서 샀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햇감자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사실, 햇감자의 놀라운 맛에 처음으로 눈을 번쩍 뜨게 된 이 날은 감자 구이가 아니라 포슬포슬한 삶은 감자를 먹었다.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 있는 우리 집에서 공기 좋은 산속의 흙의 맛을 느꼈다. 거기에 포슬포슬하며 부드러운 식감은 나의 마음까지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그 후, 냉장고에 들어간 삶은 감자를 어떻게 해서 먹을지 고민하던 찰나에 외국 유튜버들의 레시피 영상에 아주 많이 나오는, '삶은 감자를 이용한 오븐 감자 구이'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그들이 하는 것처럼 삶은 감자를 마구 부숴서 그들의 오븐 대신, 나의 에어프라이어에 넣었다. 이렇게 나의 마음을 홀딱 뺏어간 감자 구이가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그 후로 지금까지 나의 냉장고의 야채칸에는 항상 동글동글한 감자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아쉽게도 6월이 끝나가는 지금, 아쉽게도 '햇' 감자는 이제 시장에서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그냥 감자도 무척이나 맛있기에 요즘은 그냥 감자도 정말이지 감탄해하며 맛있게 먹고 있다. 하지만 이번 늦봄과 초여름, 햇감자와의 첫 만남은 나에게 참 맛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고마웠다. 햇감자야. 내년에 다시 만나자!



    문득, 감자와 팽이버섯 그리고 두부가 사이좋게 에어프라이어에 잘 안착되어 있는 것을 보고 '참, 나랑 비슷하네.' 하는 재미난 생각이 들었다. 고운 미색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모양들도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팽이버섯처럼 길쭉하고 호리호리하며, 반듯한 네모의 두부처럼 때로는 틀을 벗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네모난 사람 같지만, 동글동글하고 제 맘대로 생긴 감자처럼 헤벌쭉 웃으며 둥그렇고 자유분방한 마음속을 드러낼 때도 있는 나. 이렇게 닮아서일까, 내가 이 삼총사를 이리도 좋아하는 것이. 

에어프라이어에 입장하기 전의 삼총사들(좌), 그리고 사이좋게 노릇노릇 잘 구워져 나온 삼총사(우)
    삼총사가 에어프라이어에서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지는 것처럼,
나도 지금 노릇노릇 잘 익어가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기를.
그래서 나의 색도 짙어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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