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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Jul 19. 2024

펑펑 울고 차린 밥

부드러운 두유 크림 스튜와 달달한 파프리카 후무스

펑펑 울고 차린 그날의 저녁



    나는 어릴 적부터 눈물이 많았다. 가족들은 물론,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도 말하기를, 내가 울기도 많이 우는데 그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유난히 마음이 아파지게 참 서글프게 운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까지는 혼자서 눈물을 흘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 혹은 언니와 싸워서 울거나, 학년이 올라갈 때 친한 친구와 다른 반에 배정되어 우는 등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특히 대학원에 진학함과 동시에 상경하여 독립을 하게 된 후, 난 거의 혼자 울었다. 참 많이도 울었다. 서울에서의 첫 해에는 거의 매일 울었다. 엄마랑 통화하면서 그리운 마음에 몰래 눈물을 훔치고, 기숙사에 들어가는 길에 울적해서 울고, 낮동안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가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후에 몰려오는 적막감에 울고, 자기 전에는 내일이 막막하고 무서워서 울고, 간혹 가다가 아플 때면 서러워서 울었다. 혼자 펑펑 울다가 거울 속에 눈이 시뻘겋게 된 나를 바라보며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자. 펑펑 울자.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작년부터 나는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 점차 나의 길을 찾아나갔다. 세부 전공도 정하고 석사 논문을 위해 정신없이 열심히 달려 나가다 보니 울 일도 생기지 않았다. 힘들었어도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나름 큰 고비 없이(?) 석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막막함과 고독함의 끝을 달렸던, 박사 첫 학기가 시작된 2024년에 들어섰다. 지난 6개월을 버틴 나에게 '잘했어.'보다는 '버티느라 참 고생 많았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힘들었던 지난 6개월 동안 울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정도로 감정까지 메말랐던 것 같다. 꽃이 가득한 봄을 만끽하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푸른 숲과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해보자. 할 수 있어.' 하며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하기도 했지만, 나의 마음속에 나의 진심을 담는 구슬은 아직 추운 겨울 한가운데에서 꽁꽁 얼어있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나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마치 겨울왕국 속 하나의 잠겨진 방에 홀로 있었던 것이다. 


    6월 중순, 기다리고 기다리던 종강이 찾아왔다. 물론 연구라는 업무가 있는 대학원생이지만, 수업에서 요구하는 과제나 시험이 없게 되어서 잠깐 쉴 수 있었다.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매일 삼시 세끼를 정성껏 그리고 참 즐겁게 해 먹었다. 하지만 당연,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지난 학기가 너무나 괴로워서였을까 아니면 이제야 내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학문의 길을 계속 붙잡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볼지 고민이 드는 매일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시 잘 다닐 자신도 없었고, 새로운 시작을 해서 성공하는 것은 무척이나 막막해 보였다. 그렇다. 나는 뭘 하든 참 잘하고 싶었던 것이다. 멋지게, 우아하게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이 생각이 나의 마음속에 무겁고 차가운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있는 힘껏 꼭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참 오랜만에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일주일 전부터 이 학회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졌다. 아니나 다를까, 학회에 참석해 자리에 앉자마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편두통이 심해졌고, 그리고 굉장히 불안해졌다. 학회 내용은 들어오지도 않았고 '내 몸이 왜 이럴까. 어떡하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되겠음을 느끼고 다소 일찍 학회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몇 시간 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웃으며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어떡하지..? 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오랜만에 눈물이 왕창 쏟아졌다. 굵은 눈물 방울이 책상에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한 30분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눈물을 그친 후,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마음속에 있던 그 무겁고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햇빛에 녹아 눈물과 함께 흘러가 없어진 것만 같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들고 있던 얼음 덩어리를 이제야 놓게 된 것 같았다. 이날 녹아내린 얼음 덩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겠다. '잘' 살겠다는 욕심인지, 나에 대한 다른 이들의 시선인지, 아직 정의 내리지 못한 '인생에서의 성공'인지, 혹은 또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크나 큰 얼음이 없어지고 그 빈자리는 깨끗하고 맑은 하늘이 되었다.



    

    그렇게 울고 정신을 차리니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나 괜찮다. 그리고 괜찮을 것이야. 앞으로 건강하게, 반짝반짝, 행복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보자."라고 힘차게 다짐하며 나 자신을 응원해 주기 위해서 오직 나를 위해, 내가 먹고 싶은 것이 가득한 푸짐한 한상을 정성스레 차리기로 했다. 나의 마음속 감정 제어 센터에서 기쁨이가 나서고 있음이 분명했다!


- 향긋한 표고버섯과 달달한 애호박이 들어간 부드럽고 꾸덕한  두유 야채 스튜,

- 2:1 비율의 두유와 코코넛 밀크에 디종 머스터드 한 스푼, 레몬즙, 후추, 소금을 조금씩 넣고 마구 흔들어준 다음, 오이와 토마토를 썰어 넣은 여름의 샐러드,

- 듬직해 보이는 노릇노릇 감자 구이취나물 페스토,

- 노란 파프리카로 만든 노오란 후무스파프리카 구이.


    두유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그리고 그 따스함이 내 마음을 녹여주었고, 파프리카의 본연의 단맛이 가득 담긴 파프리카 후무스와 파프리카 구이의 달달함이 나에게 다정하게 다가와 힘을 주었다. 이 날따라 이 두 파프리카 요리의 조합이 무척이나 맛있어서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며 먹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책상을 강으로 만들 것처럼 펑펑 울었던 것이 부끄러워질 만큼이었다. 내 마음을 녹이고 힘을 준 두유 야채 스튜와 파프리카 후무스의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두유 야채 스튜

1. 다진 마늘과 양파를 냄비에서 4분가량 볶는다. 

2. 표고버섯 2개와 애호박 1/4을 넣고 볶아주다가 불을 조금 낮추고 냄비 뚜껑을 닫는다. (원하는 종류의 버섯과 브로콜리의 조합도 강력히 추천한다.)

3. 야채들이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두유 100ml + 코코넛 밀크 50ml + 뉴트리셔널 이스트 한 스푼(선택 사항)을 넣는다. 

4.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5. (선택 사항) 감자전분이나 찹쌀가루 반 스푼을 찬 물에 풀어주고, 냄비에 빙~ 둘러 부은 후 저어준다.

6. 5분가량 보글보글 잘 끓여주면 완성!

위의 레시피 보다는 액체류가 적게 들어가서 더 꾸덕해진, 표고버섯과 애호박이 들어간 스튜(좌), 그리고 위의 레시피로 만든, 새송이버섯과 브로콜리가 들어간 스튜(우)



파프리카 후무스

1. 4시간 정도 불린 병아리콩을 삶아준다. (삶은 병아리콩: 물=1:1 비율로 뚜껑을 연 채로 30분 정도 삶는다.) 

2. 그동안 파프리카 하나와 토마토 하나를 씻어서 속을 제거하고, 각각 반으로 쪼개 마늘 두 쪽과 함께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에서 구워준다. (160도로 15~20분 구웠다. 사진처럼 겉이 완전히 타기 일부직전까지 구워준다.

3. 삶은 병아리콩 200g + 물 약 100ml + 구운 파프리카, 토마토 + 식물성 오일 2 숟가락 + 구운 마늘 두 쪽 + 레몬즙 + 볶음 참깨 1 숟가락 + 소금, 후추 약간을 믹서기에 넣고 ‘윙~’ 갈아주면 완성이다!

파프리카 후무스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이 후무스를 처음 올려본 접시




    나는 요리로부터, 그리고 음식으로부터 따스한 위로와 큰 힘을 받았다.  
이날 저녁은 내가 빛, 힘 그리고 용기라는 재료로 요리해서
몽실몽실, 가벼운 구름으로 만들어 나의 마음속 맑은 하늘에 띄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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