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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Jul 26. 2024

나의 허기를 채워준,
내가 만든 디저트

다크초코 지붕 아래 코코넛 집

    나는 디저트를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크림이 가득한 케이크 앞에 있으면 단 몇 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상관없이 케이크가 만드는 핑크빛 공간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예쁘게 빛나는 매끈하고 뾰족한 포크를 조심스레 케이크 속으로 넣을 때는, 정말이지 머릿속에 '뾰로롱'하는 효과음이 들린다.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사실이다. 나도 나의 케이크 사랑을 못 말린다. 


    그런데 요즘 카페에서 케이크를 먹으려면 음료까지 해서 거의 15000원 정도가 드는 세상이다. 물론, 그 공간에서 맛있는 케이크와 함께 누리는 여유로움, 그것이 주는 행복을 생각하면 가끔은 그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고 카페를 가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크나큰 행복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나처럼 시도 때도 없이 디저트가 생각나는 사람이 그렇게 매일 카페에 갔다가는 건강에도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언젠가 체크카드의 남은 잔액을 보고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또한, 학교에서 수업을 들은 후, 내가 원하는 맛있는 비건 케이크가 있는 카페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대부분이다. 


    2024년 1학기, 나의 디저트 사랑은 더욱더 커졌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많이 허기졌었다. 주중에는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은 것이 아니라 해결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지금 내가 먹는 점심의 반도 안 되는, 딱 3시 정도까지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양만을 싸갔다. 매일 고독하게 혼자 먹는 것도 싫었고, 학식은 요리를 좋아하는 채식지향인인 나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후 수업이 마칠 때쯤이면 배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우르르 쾅쾅! 살려줘!"  하지만, 뱃속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보다 나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이 더 컸다. 그 친구는 더욱 심각한 허기짐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고독한 학교 생활은 나의 마음속에 큰 허기를 주었다. 안 그래도 어느덧 3년째 계속된 '서울에서의 홀로서기'로 인해 마음속에 항상 크나큰 외로움이라는 풍선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제 막 터지기 직전인 풍선처럼 커다랗게 부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뱃속의 허기, 마음속의 허기를 모두 채워야 했다. 


    자, 이제 우울한 얘기는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신나는 디저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좀 전까지만 해도 지난 학기의 감정을 떠올리느라 우울해진 나였는데, 신기하게도 이제 나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어진다 :)




    처음 이 디저트를 어떻게 만들게 된 것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코코넛크림은 이 연재 책의 첫 글에 소개되었듯이 나의 아침인 '코코오버나이트오트밀'을 위해 항상 집에 있었고, 다크초콜릿은 학부생이던 시절부터 꾸준히 먹어왔기에 종종 우리 집에 있었다. 아마 인스타그램의 영리한 알고리즘이 나에게 보여준 전 세계의 수많은 디저트들을 보면서 나도 따라한 것 같다. 아참, 지금은 단종이 된 듯 하지만, 이전에 내가 참 맛있게 먹었던 '비건마마'라는 카페의 떠먹는 초코 케이크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아무튼, 언젠가부터 '크림 위에 녹인 다크 초콜릿을 부어 딱딱하게 굳힌' 디저트가 유행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크림은 단연코 코코넛 크림이다. 하지만, 코코넛 밀크, 코코넛 크림 그리고 코코넛 오일 등, 수많은 코코넛 제품은 (마치 나처럼) 아주 예민하다. 온도가 어떻냐에 따라 그 질감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잘못 보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코코넛 밀크 같은 코코넛 크림은 우리가 아는, 거품기로 떴을 때 힘 있게 올라오는 생크림 같을 때가 별로 없었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더더욱 그랬다. (1L짜리 팩을 다 먹어갈 때쯤이면 그 최고의 크림을 얻을 수 있기는 하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해결책은, 치아시드와 여러 가지 가루였다. 우선, 치아시드는 수분을 흡수하여 스스로 뚱뚱해지는 특징이 있다. 보통 치아시드를 두유나 요구르트 등에 넣고 몇 시간 불려 꾸덕해지는 것을 '치아푸딩'이라고 부른다. 나의 '코코오버나이트 오트밀'의 다른 이름이 '코코치아푸딩'이기도 하다. 또한, 크림이 단단해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가루류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맛으로 선택한다. 나는 카카오가루, 콩가루, 시나몬 가루, 쑥가루, 흑임자 가루 또는 단호박 가루를 사용했다. 이렇게 두 친구의 도움으로 나의 꾸덕하고 맛 좋은 코코넛 크림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나의 "다크초코 지붕 아래 코코넛 집"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다크초코 지붕 아래 코코넛 집>
1. 치아시드 한 스푼, 원하는 가루 한 스푼을 코코넛크림에 넣고 잘 섞는다. 
2. 적어도 30분~1시간 즈음 냉장고 맨 위칸에 둔다. 
3. 다크초코 한 조각(약 8g)과 코코넛오일 한 스푼을 전자레인지 전용 용기에 담아 초콜릿을 녹인다. 
4. 코코넛 크림 위에 부어주고 냉장고에 5분만 넣어두면 완성!

노트: 사용하는 코코넛 크림 또는 코코넛 밀크의 질감이 어떤가에 따라 과정 1에서 재료별 양을 조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코코넛 제품을 조금씩 부어가며 원하는 질감을 맞추시기를 권장합니다. 단, 과정 2를 거치면 처음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다는 점을 참고해 주세요.



쑥 코코넛 크림 위에 얼린 딸기(좌) 얼린 바나나(우), 그리고 다크 초콜릿 지붕


카카오 가루를 섞은 코코넛 크림 위에 얼린 바나나, 그리고 다크 초코 지붕! 초코가 생각나는 날, 이 거 한 입이면 크나큰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흑임자 가루와 블루베리가 들어간 코코넛 집에 내가 만든 초코 크럼블을 콕콕 심고, 다크 초코 마블을 만들어주었다! 


    카카오가루나 쑥가루를 사용할 때는 주로 크림 위에 얇게 썬 얼린 바나나를 한 겹을 올리고, 견과류 몇 가지를 더한 후, 녹인 다크 초콜릿을 부어준 조합을 가장 좋아한다. 바나나와 초코의 만남은 생각만 해도 얼굴에 씨익- 바나나 같은 미소가 생기게 해 준다. :-) 또한, 흑임자 가루를 사용할 때는 얼린 블루베리를 반드시 넣어준다. 블루베리와 흑임자 그리고 다크초콜릿의 조화가 의외로 환상적이다. 저번에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였을 때 이 조합을 맛 보여주었는데, 그 놀란 눈은 지난 10년간 내가 봐온 그 친구의 눈 중에 가장 동그랬고 컸었다. 나보고 나가서 팔아달라고 그랬다. 굉장히 뿌듯했다. 최근에는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피스타치오를 코코넛크림과 함께 갈아서 피스타치오 코코 크림을 만든 후, 그 위에 다크 초콜릿을 부어보았다. 믹서기에 갈아준다는 과정이 추가되어 손이 조금 더 가고 시간이 더 걸리는 디저트였던 만큼, 참 맛있었다. (믹서기에 가는 과정은 당연 힘들지 않다. 다만, 크고 무거운 설거지 거리가 하나 생긴다...!)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는 피스타치오를 코코넛 크림과 함께 갈아서 만든 코코 피스타치오 크림 위에 다크초코 지붕! 손이 많이 갔던 만큼 굉장히 맛있었다.

    학기 중에 나는 주로 전날 저녁에 크림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면 다음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주 단단하게 잘 숙성된 크림이 나를 반겨준다. 사실, 이것 때문에 학교에서 그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너무나 빨리 걸어가서 다들 내가 바쁜 일이 있는 줄 알았을 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얼른 집에 가서 뱃속과 마음속의 허기를 채우고자 아주 급히 나왔다. 만약 (정말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지난 학기의 그랬던 나를 본 동료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부디 "그랬구나." 하고 모른 척 넘어가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솔직히 많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 세계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곳에 나의 비밀을 밝히는 이유는, 이제는 다 지난 일이기도 하고, 또 지난 학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만큼 그 시간들이 나의 인생에서는 특별하고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방황과 불안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천천히 나라는 사람, 그리고 어른이 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또, 나중에 내가 이 글을 보며 지난 학기의 나를 바라볼 때, 어떤 마음이 들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2024년의 봄, 27살의 나는 꽤나 달달하고 귀여운 방법으로 방황하고 불안했구나" 싶지 않을까.  



    나의 코코넛 크림 집 위의 다크 초코 지붕. 그 지붕을 포크로 콕 찔러 깨트려서 부드러운 크림과 함께 첫 입을 맛보면, 그날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학교에서 커질 만큼 커진 불안의 풍선에서 바람이 휘이익 빠지며 하늘 저 멀리 날아갔다. 나의 healing food, 즉 나를 '치유'해준 디저트이다. 나의 디저트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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