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캐스팅하느라 바빠요.
마지막으로 밥을 안친 것이 대략 2개월이 지났다. 물론 그 밥을 소분해서 냉동을 해놓았었기에 밥을 아예 먹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해먹을 때는 많아봤자 이주일에 한번 정도 '쌀밥'을 먹었다. 여름 맞이 다이어트?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그랬다면 차라리 렌틸콩과 병아리콩이 가득한 나의 현미밥을 먹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나는 감자에 푹 빠져있다…!
감자 삶기, 페스토 만들기, 감자 삶기, 페스토 만들기.. 를 무한 반복하게 될 것만 같은 요즘이다. 나의 첫 페스토인 취나물 페스토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기에 이색 페스토를 만드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두 번째 페스토는 무엇으로 할지에 고민이 아주 많았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페스토의 주인공이 될 채소의 캐스팅이 시작되었다. 캐스팅 담당자의 요구 조건은 꽤나 까다롭다.
1. 전성기를 맞아 '여름의 맛'이 가득 담긴 매력을 열심히 발산하고 있는 지원자일 것.
2. 자신만의 고유한 향긋함을 지닐 것.
3. 감자 구이 소년과 친할 것.
4. 오늘 주변 마트에서 만날 수 있는 지원자일 것.
세상에나. 이렇게 까다로운 캐스팅 담당자가 있을까. 수많은 야채들이 지원했지만 이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했기에 아쉽지만 참 미안하게도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누군가 빛나는 머릿결을 흩날리며 모델 워킹으로 등장했다. 그 이름은 바로 셀러리! 우선, 셀러리는 6~7월과 9~11월에 제철이다. 물론, 요즘은 셀러리를 사계절 내내 구할 수 있지만 어떠한 채소이든 '제철'이라는 것은 무지 특별한 것이다. 아무튼, 첫 번째 관문 통과! 또한, 셀러리의 향은 독보적이다. 샐러드에 조금만 들어있어도 자신의 존재감을 마구 내뿜는다. 두 번째도 통과! 다음, 포슬포슬한 삶은 감자 한 입을 먹고 싱싱한 생 셀러리를 '아삭!' 씹는 것을 상상해 보자. 생각만으로 감탄사가 연발된다! 구운 감자와도 조합이 훌륭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숨에 세 번째 관문도 통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의 마트에서 셀러리를 본 적이 많다. 드디어 최종 합격! 그렇게 셀러리가 등장함과 동시에 오디션은 종료되었고 나는 주인공 셀러리와 함께 나의 두 번째 페스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 캐슈너트 한주먹의 양, 마늘 3편을 약간 노르스름해질 때까지 구워준다. (프라이팬, 에어프라이어, 오븐 모두 사용 가능하다. 나는 에어프라이어 150도에 15분쯤 구웠다.)
2. 셀러리 한 다발의 잎 부분을 잘라 잘 씻어준다.(셀러리가 다 잠길 정도의 물에 식초를 3스푼 정도 넣은 후 5분 정도 기다린 후, 물에 헹궈준다.)
3. 셀러리 + 물 100ml + 올리브 오일(혹은 코코넛 오일) 세 스푼 + 구운 캐슈너트 + 구운 마늘 + 뉴트리셔널이스트 두 스푼(생략 가능) + 소금과 후추를 믹서기에서 "윙~" 갈아주면 완성.
주인공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놀라웠다. 역시 저 까다로운 조건들을 다 만족시킨 것은 다르구나 싶었다. 역시, 요리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까다로워지면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아프지만, 그것이 내가 원해서, 내가 좋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 끝은 더 맛있는 음식이, 그리고 행복한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감자 구이 소년과의 조합도 기대 이상이었다. 노릇노릇하고 바삭바삭해진 감자를 부드럽고 고소하며 향긋한 셀러리 페스토에 푹 찍어 첫 입을 먹었을 때, 경이로움에 입을 틀어막았다. 크. 이 둘의 만남이 어찌 이리도 환상적인지. 주인공도 멋지고 이 보물을 발견한 캐스팅 담당자도 멋지다!
그렇게 나는 약 일주일 동안 셀러리가 만드는 향긋한 세계에 빠져서 매일 감자를 구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무지 슬프고 아쉬웠지만 이번에 만난 셀러리는 나에게 행복으로 가득했던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한입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한편, 나의 감자 구이 소년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새로운 주인공을 캐스팅해야 한다! 누가 되었는지는 다음 화(혹은 다다음 화)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