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좋아, 머문 곳이 있다.
코 끝에서부터 나를 사로잡은 그 향.
향이 이끈 그곳엔,
마음 깊은 곳에 무심히 접어둔 기억과
마주하며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지난날 몸부림치며 거부했던 기억은,
코끝에서부터 찾아온 가녀린 향으로
뒤섞인 채 나와 재회하고 있었다.
거침없이 내 기억의 시선을 사로잡는
향의 기품에 놀라, 나는 숨의 끝이
안 보이는 순간까지 향의 기억을
내 안에 담아보려 했다.
그러나, 기억의 재회를 이끈 향은
그 모든 것이 ‘덧없음’을 말하며
빗물에 씻겨나간 페인트처럼,
무감각하고 구석진 기억 너머로
흐릿하게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