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

초단편소설

by 현범

“아직도 그겁니까?”

날카로운 목소리가 굳은 어깨 위로 내리꽂혔다. 여자는 땀으로 축축한 손을 작업복에 문지르며 소리가 난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미간을 잔뜩 좁힌 김 대리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몸이 영…….”

“몸 관리가 업무 능력입니다. 아줌마 말고도 일할 사람 많아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자는 멋쩍게 웃으며 서둘러 변명 같은 아양을 떨었다.

“에이, 우리 대리님. 제가 이거 후딱 다 옮기고 문단속까지 야무지게 해놓을게요. 고생하신 대리님 먼저 들어가세요. 잘생긴 얼굴 찌푸리지 마시고.”

김 대리는 못마땅한 표정을 거두지 않은 채 혀를 차며 공장을 나섰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여자는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쉬며 다시 박스 위에 주저앉았다. 이마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턱 끝에 매달려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이곳에서의 일은 단순했다. 20킬로그램짜리 소금물 머금은 박스를 하루 열 번, 공장 1층에서 2층 창고로 옮겨 쌓는 것. 다만 엘리베이터는 없었고, 오직 두 다리로 계단을 올라야 했다. 때로는 아파트 2층 높이로 쌓인 박스 더미 위로 위태로운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야 했다. 높은 일당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사내들조차 하루를 못 버티고 도망가는 일이었다.

여자가 그 무게를 스스로 짊어진 지 3년이 흘렀다. 그녀 나이 마흔, 남편은 어느 동남아시아 여자와 새살림을 차려 떠났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열두 살 아들 ‘시우’와 빛 한 줌 제대로 들지 않는 지하 단칸방뿐이었다.

남편과 헤어질 때 변변찮은 위자료도 받지 못했다. 다만 남편은 마지막 양심이었는지, 아니면 처치 곤란한 짐이었는지, 시우가 아끼던 500만 원짜리 그랜드 피아노를 그 비좁은 단칸방으로 보내왔다. 방의 5분의 1을 차지한 피아노는 그 공간의 초라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시우는 피아노를 좋아했다. 건반 위에서 춤추는 아들의 손가락을, 연주에 맞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여자의 유일한 낙이었다. ‘음악적 재능이 특출나다’는 담임 선생의 말 한마디에, 여자는 무리해서 한 달에 30만 원짜리 피아노 학원에 아들을 보냈다. 빠듯한 살림에 잔업까지 해야 했지만, 아들의 재능과 행복을 지키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느새 중학생이 된 시우는 연습에 게을렀지만, 여자는 괜찮았다. 가끔 들려주는 짧은 연주에도 ‘역시 우리 아들’이라며 아낌없이 칭찬을 부었다.


여자는 박스 두 개를 한 번에 들쳐 메고 창고 입구까지 옮겼다. 쿰쿰한 배추 냄새와 서늘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제 키의 두 배는 됨직한 박스의 벽이 입구 코앞까지 막아선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작년만 해도 세 개는 거뜬했는데. ‘나도 많이 죽었네.’ 그녀는 작게 읊조리며 옷소매로 땀을 거듭 닦았다.

그때였다. 바지 주머니에서 띠링- 하는 소리가 울렸다. 시우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었다.

「한그늘 피아노입니다. 이시우 학생이 무단결석했음을 알립니다. 확인 바랍니다.」

여자는 곧장 통화 목록 맨 위의 ‘사랑하는 아들’을 눌렀다. 신호는 계속 울렸지만, 아들은 받지 않았다. 꾸짖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부족한 어미를 만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었다. 여자는 카카오톡을 열어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적었다.

「아들~ 오늘 저녁에 삼겹살 구워….」

그 순간, 어지러움과 함께 찾아온 두통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중심을 잡으려 필사적으로 뻗은 손이 박스 더미를 밀쳤다. 위태롭게 서 있던 박스들은 몇 번 흔들리더니, 그녀가 서 있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쿵-

같은 시각, 시우는 교과서를 잔뜩 담은 가방을 피아노 건반 위로 내리꽂았다. 한꺼번에 눌린 건반들이 둔탁하고 불쾌한 파열음을 냈다.

“야… 이러다 너네 엄마한테 혼나.”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걱정했지만,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고장 나면, 다시는 연습하라고 안 하겠지. 피아노만 그만둘 수 있으면, 혼나는 건 상관없어.”

그는 건반 위의 가방을 치우고 손가락으로 건반 하나를 눌러보았다. 제값을 하는 피아노는 여전히 맑고 경쾌한 소리를 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시우는 주먹으로 건반을 몇 번이고 강하게 후려쳤다.

“왜! 왜 안 망가지냐고!”

둔탁한 소음만이 방 안을 어지럽게 울렸다.

쿵, 쿵, 쿵-


※ 본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으로 창작된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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