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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Apr 14. 2022

오지랖 넓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오지랖과 배려의 거리

미국에 사는 언니가 전화를 했다. 

올해 엄마 생신 날짜가 아니고 다른 때 오면 안될까 해서,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의논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큰언니는 미국에, 작은언니는 뉴질랜드에 사는데 작년에 엄마 생신 관련 행사를 하려 했다가 오미크론 때문에 취소하고, 비행기표를 홀딩시켜 놓고 있었다. 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비행기 표는 엄마 생신에 맞춰 와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전화는 새벽 1시 반 정도에 왔다. 전화를 끊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날 마음에 걸릴 일이 몇 개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난 신랑한테 큰언니와 통화하고 나서 속상하다고 말했더니 왜 그런 걸로 속상해하냐고 오지랖이 넓은 거란다.


갑자기 이전에 쌓인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오지랖 넓다'라는 단어에 폭발했다. 

내가 아는 오지랖 넓다의 뜻은

주제넘게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하다

인데


내가 주제넘게?(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고 의논해서 결정하라고 했다. 하지만 언니가 옳다고 생각하는 언니의 생각은 언니만의 생각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아무 일에나?(언니가 물어보는데, 나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가족의 평화가 깨질지도 모르는데, 아무 일인가?)

쓸데없이?(더군다나 쓸데없기까지 하다니!!!)

내가 언니가 결정할 일을 나서서 해결해주겠다 했으면 그건 분명 오지랖이다. 하지만 난 그 선을 넘지 않았고, 언니의 행동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한 것이다.  


"시어머님이랑 당신이랑 사이가 안 좋을 때, 내가 시어머님께 전화해서 어머님의 오해를 풀어드리고 사이를 좋게 하려고 애썼다면 이건 오지랖이야, 아냐?" 했더니 그건 오지랖이 아니란다.

신랑은 당신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거란다.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근데 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뻔하다. 관계가 틀어지고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결국 신랑네 집에서도 그 역할을 내가 하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면 그 혜택은 신랑이 제일 많이 본다. 하지만 단어의 뜻대로 하면 나는 주제넘게! 쓸데없이! 아무 일! 에나 참견한 사람인 거다.


오지랖이란 단어에 대해서 한참 생각했다. 

오지랖의 뜻을 찾으면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이라고 나와 있다. 

Daum 백과사전에는 오지랖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다.

<오지랖은 앞가슴을 감싸는 부분입니다. 오지랖이 넓으면 가슴을 넓게 감싸 줍니다. 그런데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람을 '오지랖이 넓다.'고 하지요. 또 그런 사람에게 "오지랖이 몇 폭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남을 배려하고 감싸는 마음이 넓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 마음이 지나쳐서 남을 귀찮게 하였을 대,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오지랖이 넓은 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 좁은 가슴이 더 문제이지요.>

여기에는 이 글을 쓴 사람의 생각이 들어 있다.


오지랖의 예시는 다 안 좋게 되어 있다. 그나마 찾은 조금 나은 예시다.

강쇠네는 입이 재고 무슨 일에나 오지랖이 넓었지만 무작정 덤벙거리고만 다니는 새줄랑이(생각과 행동이 방정맞고 경솔한 사람)는 아니었다.  

특별히 설명을 달지 않으면 오지랖이 넓은 건 안 좋은 거다. 심지어 쓸데없는 일이다!!!


단어에 대해서도 나는 정확히 뜻을 따르지 않으면 오해가 더 커지고 이상한 논리를 피게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신랑은 미팅에서 만난 여자에게 손을 잡아도 되냐고 물어야 하는데 "손을 만져도 되냐?"고 물어서 상대방 여자가 기겁을 하게 할 정도로 언어의 적절성과 맛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단어 원래의 뜻을 기본으로 삼아야 할 뿐더러 언어의 맛을 많이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에 더 단어의 뜻에 민감할 수도 있다. 


'오지랖이 넓다'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나를 돌아본다. 나는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고 명확하게 밝히고 싶어하는 특성이 있는 걸 알았다. 

근데 아무 데서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혹시,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그런데 신랑이랑 속 얘기를 하면서 나의 본 모습, 본성이 제일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끝까지 따지고 들어간다. 신랑이 안전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못 만났다면 본성을 모르고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지랖이 넓은 것이라면 하지 않아야지. 나는 선의의 뜻으로 했다 하더라도 누군가에는 오지랖이 넓은 것일 수도 있었을 거라는 걸 아프게 반성했다.


사실 세상이 더 삭막해진다 해도 나의 책임은 아닌 것을... 왜 끌어안고 잠도 못 자고  '오지랖이 넓다.'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단어에게까지도 오지랖이 넓은 것일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배려가 많은 사람이다.'라고 쓰고 싶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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