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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Apr 18. 2022

햇반은 김이 있어야

농업박물관_먹을 것을 구하는 것의 어려움

농업박물관은 농협이 만든 박물관이에요. 

농협홍보관 층에 가서 신석기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농업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했어요. 그리고 음식물 사오기를 했어요. 그뒤 메주에 관한 그림책을 읽으며 장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시 박물관으로 들어가 농업생활관과 농업역사관을 둘러보고 문제를 풀었어요.

(참고로 한 책 :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오천년 우리 과학, 신토불이 우리 음식, 농업박물관, 대장간이 들썩들썩, 메주야 메주야, 김치가 최고야 등. 상황에 따라 책을 다 보여주거나 몇 권만 보여주거나 해요.)


농업박물관에 가면 꼭 음식물 사보기를 해요. 

저학년들은 제가 데리고 가까이 있는 하나로마트에 가서 고르게 하고 고학년들은 스스로 가게까지 찾아서 사게 해요. 


이게 또 신기하게 같이 데리고 가서 사면 조금 비슷한 것을 사고 

처음부터 알아서 하라고 하면 서로 아주 다른 걸 사와요.


낯선 곳일 수도 있지만 그래야 신석기 시대 먹을 것을  구하던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지, 하고 팀을 나누어 흩어보냅니다. 몇 가지 포인트가 있어요. 팀끼리 어떻게 의논해서 샀는지 의견을 모아야 하고, 왜 샀는지 그 이유를 꼭 사온 뒤 말해야 해요. 가끔은 팀끼리 점수 매기기도 해요.(가끔 원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고 구성원에 따라 그렇게 하면 더 재미있어 하기도 해요.ㅎ) 돌아오는 시간을 정해주면 그때부터 이리저리 가게를 찾기 시작합니다. 

먹을 것이 있는 장소를 고르고 또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고르겠지요. 두 사람당 3000원 정도의 돈을 주는데, 금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또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입니다.ㅋ


가끔 사오기를 하기 전에 아이들과 의논해서 기준을 정하기도 하는데, 기준에 건강이 들어가면 사온 음식물을 안 먹는 경우가 많아서 언제부턴가 잘 안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건강도 선택 요소로 넣었지요.


아이들이 음식물을 사왔어요. 

한 팀은 하늘보리와 피치, 사과쥬스를 사왔는데, 오래된 역사와 좋아하는 것이 주 이유였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는 피치였습니다. 서로 달라고 해서 금방 다 먹어버렸어요.

한 팀은 햇반, 두유, 옥수수 수염차를 사왔는데, 건강과 전통이 사온 주 이유였습니다. 건강을 생각해서 사온 두유는 결국 선생인 나에게 양보하고 햇반은 그날 김을 싸서 먹으면 맛있겠다고 그리 하자 했지만, 그러면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를 것 같았어요. 햇반은 공동으로 산 거니 한 사람이 가져가기가 애매한 듯하여 제가 가져가고 다음에 김에 싸서 같이 먹기로 하였습니다. 


음식물 사오기 기준에 건강이 들어가면 아이들이 꼭 자기들이 잘 안 먹는 거를 사오곤 하는데, 혹시 이번엔 다를까 했는데...이번에도 그랬어요. 건강엔 좋은데 먹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건강이 중요하긴 한데 좋아하고 맛있는 것이어야 결국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소화하고 즐겁게 먹을 수 있겠구나!


저 혼자 또 깨달은 시간이었어요.ㅎㅎ 

건강을 공부로 바꿔보면 결국 공부와 즐거움,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건데 쉽지는 않지요.


거의 마무리 시간, 오늘 배운 거를 문제로 풀어보는데, 한 아이가 무척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쟤가 8대나 때렸어요. 밀어서 넘어져서 멍까지 들었다고요."

"내가 언제?"

"유치원 때부터 때렸잖아."

그랬더니 안 때렸다고 하는 아이가 갑자기 핸드폰에서 둘이 사이좋은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이것 봐. 우리 둘이 이렇게 사이좋은데, 때렸겠냐구."

"때렸잖아."

"음, 이 사진은 사이 좋을 때 찍은 거네. 근데, 누가 싸우는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겠어. 증거 불충분." 

"그래 때렸어. 근데 무슨 8대야? 1~2대 때렸구만."

"무슨, 여기, 여기, 여기...더 때렸잖아."

가만히 지켜보았어요. 이대로 없던 일이 될 것 같지 않았어요. 이 팀은 오래 전부터 서로 알던 아이들이라 묵은 감정까지도 나오네요.

"그럼 샘이 보니 8대는 아니지만 최소한 4대는 때렸네. 일단 몇 대인지는 넘어가고 네가 쟤 때린 건 맞지?"

"네."

"그럼 때린 건 맞으니까 사과해야 되지 않을까? 억울해하는데."

"근데, 재는 욕 했단 말이에요."

"너도 욕했으면 사과해야겠다. 서로 잘못한 거 사과하면 되겠는데."

"욕보다는 때리는 게 더 나쁘잖아요. 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저는 사과하지 않겠어요."(이 아이, 요즘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있다고 어머님이 그러셨어요.)

갑자기 토론이 시작됐어요. 욕이 더 나쁘냐, 때리는 게 더 나쁘냐? 

서로 얘기하겠다고 손까지 번쩍번쩍 들었어요. 짧은 시간에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보였어요.

일단 때린 아이는 사과를 하기로 했습니다.

"미안해. 난 장난으로 한 건데 네가 아플 줄은 몰랐어. 앞으로 조심할게."

진지한 자세였어요. 괜히 또 저 혼자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욕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를 욕으로 봐야할지, 어느 정도이면 사과를 해야 하는지 토론해 보고 그때 사과를 하기로 했어요. 


4학년, 슬슬 사춘기 시작입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요. 어머님들 힘드실 거예요. 

사춘기는 다시 리셋되어 자아를 찾는 기간이에요.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집은 넓어진다는데 얼만큼 넓어질지도 모르겠고, 가구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고, 끝이 어딘지도 모르겠고요. 

부모님 말도 선생님 말도 꼭 맞는 것 같지는 않아서 혼자 하고 싶은데, 또 자신은 잘 모르겠고. 심지어 감정도 지 맘대로라 차분하게 생각하기가 힘드니. 이 모든 걸 표현하기도 힘들고 총체적 난국일 거예요.


사춘기든 아니든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는 꽤 진지하고 중요합니다.ㅎ 

고민을 진지하게 가만히 들어만 주어도 아이들의 고민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나가지요. 불만과 고민이 있다는 건 잘 크고 있는 거예요! 

사춘기를 지켜보는 어머님들, 고생 많으세요. 파이팅입니다!!


다음 시간엔 햇반을 김에 싸먹으며 어디까지를 욕으로 보고 사과해야 될지에 대해 토론해야 합니다.

선생이 고민하고 자료 찾아가고 그랬는데, 아이들이 잊어버리지는 않겠지요.ㅋ 

잊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처음에 자기들이 지은 수업 로고송도 기억하고 있으니...


역사 공부 시간에 이딴 거 하나 하고 부모님께서 싫어하실 수도 있겠지만, 노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토론을 놀이로 삼아봐야겠어요. 

이 팀 아이들은 토론에 적극적이고 즐기는 것 같아 보여서요.(아직은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모두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말하는 걸 좋아하더라구요.) 

노는 시간을 줄이고 토론한다는 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겠지요.ㅎㅎ


근데 다음번 수업은 화폐박물관과 남대문 시장을 돌아볼 건데, 햇반과 김을 어디에서 먹지요?



다음번 수업은 불교중앙박물관 전시가 끝나기 전 보려고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수업을 하고 인사동에서 향초 만들기를 했어요. 

햇반과 김은 똥빵과 아이스크림에 밀리고...결국 제가 집에서 먹었답니다. 욕 문제는 그 사이에 아이들끼리 서로 얘기했대요... 욕을 한 아이가 더 이상 욕을 안 하더라구요. 물어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듣고, 스스로도 생각해 보니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하기로 했답니다. 

"기특하다, 잘했다." 몇 번이나 칭찬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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