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정비 비용이 뭔가 좀 이상하다?
2023년 2월 초, 제조사 보증이 막 끝나고 이제 갓 5만km를 넘긴 BMW를 인수했다.
대한민국에 굴러다니는 자동차들은 일반적으로 1년간 2만km 내외를 주행한다.
그러니까 내가 구매한 차는 1년에 고작 1만km만 주행한 꼴로서, 즉 기계 부품들의 노후화가 상대적으로 더딘 상태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 구매할 당시 자동차 컨디션은 매우 좋았다.
판매딜러도 꽤 친절한 편인지라 자동차 소유권을 이전하기 전 몇 가지를 미리 정비해 주었다.
1) 엔진오일 교환, 2) 냉각수 보충, 3) 휠얼라인먼트 조정
지금 따져보니 정비비용 30만원 정도를 아껴준 셈이다.
차를 인수하자마자 설렘은 잠시 뒤로하고 공업사를 찾아갔다.
공업사에 오게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구매한 이 차가 정상적인 상태인지 검증하고 싶다는 내용이었고,
미리 정비해야 할 것은 지금 정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업사 사장이 이것저것을 10분정도 보더니 크게 고칠 것이 없다고 했다.
고작 5만km 뛴 차는 크게 손볼 것도 없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다만 세가지 정도만 정비하자고 권했는데 미션오일 교환, 플렉시블 조인트 교환, 디퍼런셜 오일 교환이 그 내용이었다.
당시에 나는 자동차 정비 지식도 별로 없었거니와, 정비 비용에 대한 감각도 전무했다.
물론 잘 알았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미션, 디퍼런셜)오일이야 몇 만km 주기로 당연히 교환해야 하는 것이고, 플렉시블 조인트는 부품 자체에 금이 생겼다는데 어떻게 정비하지 않고 배짱 부릴 수 있겠는가?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플렉시블 조인트에 발생하는 크랙은 BMW G30의 대표적 고질병 중 하나였다.
플렉시블조인트는 자동차 시동으로 인해 차체에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정확히 말하면 소모품을 교환하는 정비인데, G30 5시리즈가 다른 차들에 비해 교환주기가 유독 빨라 흔히 고질병이라 부른다.
권유 내용대로 정비해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정비가 다 되었다는 말과 함께 대금이 청구되었다.
"80만원이요?"
멘탈이 살짝 흔들렸다. 아니, 사실 좀 많이 흔들렸다.
간단한 정비만 두어개 한 것 뿐이었다.
대수롭지 않던 사장님의 말투, 그리 오래 걸리지 않던 정비시간 등을 종합해서 판단했을 때 청구된 금액은 내 예상 견적을 몇배나 뛰어넘은 것이었다.
사장님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척 노력했다. 이런일 많이 겪어봤다는 듯, 나 그렇게 궁색한 사람 아니라는듯...
하지만 목소리는 공명을 잃어버렸고 나는 그 이후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수입차를 유지한다는 것은 국산차 관리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수입차도 필수 오일류만 주기적으로 교환할 경우, 국산차와 비슷한 가격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의견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처맞기 전까지는.
업계 소수의견을 신념처럼 믿어버린 내 잘못이었다.
일시불로 긁고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려보여서 덤탱이를 맞은건지, 다른 공업사도 다 비슷한지 가늠이 안됐다.(결과적으로는 정비업계 시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80만원 들인만큼, 자동차가 더 잘나가는 느낌이 들어 위로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와이프에게 60만원이 들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는데, 내 속도 모르는 와이프는 왜이렇게 비싸냐며 나를 갈궜다.
샤워를 하며 오늘 크게 액땜했으니 곧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있을 진짜 액땜을 겪지 못한 어여쁜 자의 자기방어적 합리화였다.
그래서 지금은 어떠냐고?
공업사에 들어갈때마다 두손모아 빈다.
'제발 오늘은 80만원만 나오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