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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Mar 07. 2023

천사를 보신 적이 있나요?

토요일 아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꽃 배달이 왔습니다. 지난주 그림책 에세이 ‘무당벌레의 선물’에서  아무 기념일도 아닌 날에 꽃 선물을 받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올렸는데 놀랍게도 며칠 뒤 너무 비싸서 사지 못했던 프리지어 꽃이 한 아름 나에게 왔습니다. 사실 은근히  글을 읽은 남편이 보내준 건가 기대했는데 역시나 남편은 “먹지도 못하는 꽃을 왜 사냐!” 며 꽃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세상에! 나에게 꽃을 선물한 분은 피어라 님이었습니다.


피어라 님은 나보다 먼저 브런치를 시작하고 친절하게 나의 브런치 입문을 도와준 안내자이며 첫 번째 구독자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려 깊은 선물로 매번 나를 감동시키는 것이 아무래도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임이 틀림없습니다. 피어라 님은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프로그램 강사와 학부모로 처음 만났습니다. 보통의 학부모들은 독서교사에게 무심하거나 불만족을 민원으로 제기하며 교사를 난처하게 하는데 피어라 님은 언제나 다정한 웃음으로 감사를 표현해 주었습니다. 피어라 님의 자녀 DH도 책을 좋아하며 영리하고 말이 잘 통하는 귀여운 아이였지요. 교사들은 종종 말합니다. 아이들과 부모는 정말 닮아서 예쁜 아이 뒤에는 예쁜 엄마가 있다고요. 피어라 님은 마음뿐 아니라 외모도 딱 천사처럼 아름답습니다. 늘씬한 키에 뽀얀 얼굴과 동그랗고 큰 눈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어딘가에 날개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여름 피어라 님과 함께 참여한 그림책 창작수업에서는 피어라 님의 숨은 재능과 솜씨를 보고 모두들 놀랐지요. 피어라 님의 그림책이 출간되면 첫 번째 독자는 바로 주디스 홍입니다. 우리는 그림책 동아리와 그림책을 읽어주는 ‘리딩인’ 자원 활동도 함께하는데 그런 든든한 조력자이며 동지인 피어라 님이 얼마 전 거리가 꽤 먼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무리 교통과 통신이 발달된 세상이라지만 같은 동네에 가깝게 살았던 때와는 큰 차이가 납니다. 멀어진 물리적 거리만큼 아쉬움도 크고 얼마나 서운한지 모릅니다.


사실 나는 많은 사람을 알고 있지만 그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어딘가 불안정하게 끼어있는 듯할 때가 많습니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소심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지요. 그래서 오히려 쾌활한 척, 상처받지 않은 척 감정을 감출 때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 같은 나는 거침없는 센 캐릭터 언니들보다 온유하고 예의 바른 사람을 좋아합니다. 피어라 님은 나이는 어리지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사려 깊은 사람입니다.


빨간 머리 앤은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말합니다.

“마릴라 아주머니, 에이번리에서 제가 마음의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요?”

“뭐, 무슨 친구라고?”

마음의 친구라고 했어요. 친한 친구 말이에요. 깊은 속을 다 보여 줄 수 있는 마음이 꼭 들어맞는 친구요.”


앤이 다이애나를 만났을 때의 기쁜 마음을 담아 마음의 친구 피어라 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보내주신 꽃들이 더욱 활짝 피어서 향기가 온 방을 감싸고돕니다.


! 남편은 먹지도 못하는 꽃을 사주지는 않지만 대신 부상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 오는 사람입니다. 해마다 오월이면 우리 아파트 담장에 하얀 찔레꽃이 피어서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꽃 속에 벌처럼 향기를 탐닉하는 저를 유심히 보던 남편은 퇴근길에 찔레꽃 몇 가지를 따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찔레가시에 마구 찔려서 피가 뚝뚝 뭍은 손으로 찔레꽃을 나에게 주었지요. 그런 남편을 보며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다음부터는 가시 없는 라일락을 따와!”라고 주문했습니다. 다음날 남편은 보라색 라일락을 따와서는 그 작은 꽃을 콧구멍 속에 쏙 넣으며 “이러면 향기가 더 많이 다!”라고 말했습니다.


*위 그림은 빨간 머리 앤 /인디고/ 김지혁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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