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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Jan 30. 2023

소심한 소소 씨가 하려던 말은

소심한 꼰대

나는 꼰대입니다.

잔소리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마감하는 절대 큰소리는 못 치는 소심한 꼰대입니다.

나의 잔소리는 염려와 애정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들은 나의 진심을 오해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슬픕니다.

저도 꼰대의 훈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때 들리지 않았던 꼰대의 말이 이제야 들립니다.

꼰대가 말에 수위조절만 잘한다면 꼰대에서 현자로 승격할 수 있습니다.

라떼는 꼰대를 경로 우대하던 시절도 있었지요. 지금은 꼰대를 티 나게 무시하고 비꼬는 무례한 세상입니다.

꼰대는 생각합니다. ‘너희들도 멀지 않아 꼰대 클럽에 합류하게 될 거야! 누구나 꼰대가 될 자질이 충분하니까'


꼰대의 하루는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작은아이까지 죽을 둥 살 둥 입시를 마치고, 큰아이는 군대전역을 명 받고 집에서 병장답게 꼰대에게 밥을 시킵니다. 그래도 불철주야 근무를 서다 온 아들을 위해 꼰대는 기꺼이 밥을 해서 받칩니다. 꼰대는 밥 하는 것보다 책 읽는걸 더 좋아하는데 책을 한 장 넘기기 어렵게 ‘뭘 해서 먹나?’ 밥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한 번도 현모양처를 꿈꾸지 않았건만 자꾸 현모양처로 밀려납니다.


꼰대는 자신이 꼰대인지 몰랐습니다.

어느 날 “엄마 꼰대같이 왜 그래?”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아니 내가 왜 꼰대야?”

“엄마 오래전부터 꼰대였는데......”

기가차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꼰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꼰대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사전을 검색했습니다.

꼰대는 은어로 ‘늙은이’, ‘선생님’을 이르는 말로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가르치려는 권위적인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늙은이도 권위적인 사람이란 표현도 맘에 안 들지만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꼰대의 경험은 몸소 뜨거운 불에 손을 데고, 맨땅에 헤딩하고, 날카로운 것에 찔리며 체득한 처절하고 선구적인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꼰대라는 말이 너무 평가절하 되어 안타깝습니다. ‘어른’이나 ‘인생 선배'로 순화해서 불리면 좋겠습니다. 꼰대도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어디서나 계산에 힘쓰며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 진심을 표현한다면 좋은 관계는 물론이고 존경받는 꼰대가 될 수 있습니다.


먼 옛날 꼰대의 꼰대는 딸 일기장을 몰래 보며 딸의 인생에 '안돼'라는 보호망을 치곤 했습니다, 딸은 금세 눈치를 채고 일기장을 전시용 일기장과 자물쇠 있는 비밀일기장에 이중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딸이 좋아하는 동화책을 사주시고, 동생들 몰래 수시로 용돈도 주시고, 성탄절에는 직접 카드를 써주시고, 월급날에는 가족 외식을 시켜주시던 젊은 날의 아빠가 생각나고 그때가 그립습니다. 가족을 위해 청춘을 지불한 꼰대의 노고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꼰대의 특징을 가볍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산전수전 달관으로 무서울 게 별로 없다.

2. 사람 보는 눈이 무당보다 용하다.

3.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4. 이미 한 얘기를 하고 또 한다.

5. 뒤끝 있다

5. 체력이 저질이다.

6. 쓸데없이 눈물이 많고, 혼잣말도 많다.

7. 외로운 것과 심심한 것을 잘 구별 못한다,

9. 트롯 오디션에 과몰입한다.

10. 눈웃음과 애교가 많은 사람에게 약하다.(전문용어로 싹싹한 사람)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이중에 5개 이상 공감된다면 당신도 꼰대입니다.


나는 어느새 꼰대가 되었습니다.

꼰대가 될 줄 몰랐지만 이왕 꼰대가 된 거 존경받는 꼰대, 따뜻하고 푹신한 꼰대가 되려고 합니다.

오늘도 수많은 꼰대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꼰대가 참 어른이 되는 그날을 향해 야금야금 행진합시다.

참! 저처럼 돈 없는 꼰대들은 지갑대신 귀와 마음을 여시고 따뜻한 눈빛을 발사하시면 됩니다.


사진출처: pixa 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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