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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Oct 06. 2023

버려! 안돼!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


드디어 새집으로 변신한 우리 집에 입주하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온 지 19년 만에 처음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원래는 이사를 계획하고 작년에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지만 뜻대로 팔리지 않아 리모델링을 하기로 큰 마음을 먹었다. 살면서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보다 두 배로 일이 복잡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공사는 3주나 걸렸고 그동안 우리 식구들은 원룸에서 복닥복닥 지지고 볶으며 새로 단장된 집으로 입주하기만을 기다렸다.


서울외곽이지만 비교적 교통도 편리하고 산 아래 동네라 공기도 좋고 생활 편의시설도 잘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이 어릴 때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쭉 여기서 살았다. 한집에서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는 청년이 되도록 살고 리모델링을 한 후 또 눌러살게 되었으니 나는 부동산이나 집테크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공사를 앞두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해가 바뀔 때마다 꾸역꾸역 늘어나는 짐들과 수납공간 부족으로 여기저기 틈만 보이면 숨바꼭질하듯 숨겨두었던 살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가구며 생활 집기들이 낡고 칠이 벗겨져 지저분해 보이는 것은 둘째치고 한집에 오래 살다 보니 쌓여 있던 짐이 정말 많았다.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부터 언젠가 쓸 데가 있겠지 하며 모셔놓은 살림들까지 꺼내어 모두 버렸다. 그런데 버리려고 내어 놓은 물건들 때문에 남편과 다툼이 생겼다. 버리는 일에 적극적인 나와 다르게 화장지 한 장도 허투루 쓰는 사람이 아닌 남편은 버린 것을 도로 들여놓으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직도 멀쩡한데 왜 버려!”

이건 쓸 만큼 썼고 많이 낡았는데 버리자!”

내가 늙으면 나도 버리려고? 안돼! 차라리 나를 버려라!”

이건 너무 오래되고 쓰지도 않는데 그냥 버리자!”

너는 맨날 환경 환경하면서 환경 문제 심각하다고 걱정하더니 이렇게 쓰레기를 많이 버리면 환경이 얼마나 오염되겠냐? 버리면 또 새로 사야 되는데...”

렇게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다 점점 언성이 높아져 싸움이 되었다.


남편이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주로 오래되고 사연이 있는 것으로 시부모님과 함께 살 때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이었다. 어머니와 사이가 각별했던 남편은 어머니의 손때가 뭍은 살림살이들을 내가 물려받아 쓰기를 바랐고 마음 약한 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남편이 측은해 시어머니 살림을 끌어안았다. 베란다 화초의 대부분도 시어머니가 키우시던 것들로  우리 아이들보다도 나이가 많다. 그러니까 나는 남편에게 마음을 정리할 유예기간을 충분히 준 것이다.


결국 남편은 공사가 끝난 후 묵은 짐들이 새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짐들을 버렸다. 아주 많이 버렸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가는 집을 보며 홀가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리 동 앞에 내가 버린 가구들과 집기들을 보게 되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사물에도 정이 드는지 버려져있는 가구들이 처량해 보이고 살짝 아까운 느낌마저 드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를 보며 할 말이 있는 듯 울먹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식구들과 오붓하게 저녁을 먹던 식탁이며 아직도 나의 온기가 느껴질 것 같은 혼수용 가구들로 우리 가족의 역사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었다.   폐기물 신고 스티커를 붙이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가구들을 쓰다듬다가 그만 “얘들아 잘 가! 미안해!”하고 인사를 했다.


사실 나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입었던 옷들이나 유치원과 학교에서 만든 미술작품들을 모아놓은 활동집, 일기장, 상장, 성적표 같은 기록물들과 또 내 책장의 책들이었다. 책은 중간중간 많이 정리해서 버렸지만 새로 사서 컬렉션 해 놓은 책들과 좋아하는 작가들의 오래된 책은 수납공간이 아무리 부족해도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마음을 정리해 보면 그 물건들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쓰레기지만 남편이나 나에게는 소중한 순간의 기억들이 담겨 의미 있는 흔적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정표처럼 오래되고 낡은 것을 간직하며 과거를 잊지 못하는 미련이 많은 사람들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버리고 버리고 딱 필요한 만큼 최소한의 것으로 가볍고 심플하게 살라고 말한다. 살면서 지금처럼 많이 버려 본 적이 없지만 나는 그래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가볍게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아무튼 버려도 버려도 끝없이 나오는 오래된 짐들과 쓰레기를 치우느라 나는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아파서 누워 앓으며 내가 버린 것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생각했다.

*표지그림과 위의 그림은 제가 버리지 못하 고이 간직하고 있던 큰아이가 어릴 때 그린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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