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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Mar 29. 2023

별명은 밥통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별명은 밥통이었습니다.

도시락도 아닌 밥통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학기 초였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지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밥도 안 먹고 나를 깨우지 않은 엄마한테 엄마 때문에 지각한다고 찡얼거리며 도시락을 팽개쳐두고 집을 나왔습니다. 숨이 차도록 뛰어서 간신히 지각은 모면했습니다. 그러나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지 3교시쯤 되니 뱃속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4교시 생물시간만 끝나면 매점에서 빵이라도 사 먹어야겠다고 벼르며 도시락 두고 온 걸 후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생물 선생님이 한참 설명하시다 말고 교실 뒷문 쪽으로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맨 뒤에 앉아있는 학생에게 도시락 가방 하나를 건네받으셨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연두색 도시락 가방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밥통 주인 누고?”라고 질문하셨고 맨 뒷줄 친구는 “그 도시락 홍선영거예요. 홍선영 엄마가 지금 막 뒷문으로 선영이 한테 주라고 저에게 맡기고 가셨어요.”라고 하자 선생님은 다시 “홍선영이 누고?”하셨습니다.

아!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믿을 수 없어 어리둥절해하며 “전데요.”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칠칠치 못하게 밥통도 안 챙겨 와 엄마한테 심부름이나 시킨다며 “너는 이제부터 밥통이다! 알았냐? 밥통!”하셨습니다. 순간 교실은 낄낄대는 소리로 넘쳤고, 그때 나는 쥐구멍의 쓸모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날 어떻게 도시락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이후로 아이들은 나를 이름대신 밥통이라고 불렀습니다. 내 인생 최악의 별명이었지요.

사실 그때는 지금보다 낯을 더 가려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했고 하얀 피부 탓에 걔! ‘얼굴 하얀 애‘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얼굴 하얀 애로 불릴 때는 나를 새침데기로 알고 말을 잘 붙이지 못했던 아이들이 내가 졸지에 밥통이 된 이후로는 덜렁쟁이에 허당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 마냥 쉽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밥통 덕분에 반 아이들과 모두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또, 생물 선생님이 나를 밥통으로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물공부도 게을리할 수 없었습니다. “밥통 성적이 이게 뭐고?”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지금 나의 별명은 ‘홍 작가’입니다. 진짜 작가라기보다는 놀림 섞인 별명인데  공모전에 매번 떨어지다 어떻게 ‘브런치‘에 입문하게 된 걸 기특하게 여긴 남편이 지어준 별명이지요. 언제나 내 꿈은 작가였는데, 언젠가 별명이 아닌 진짜 홍 작가로 불릴 날이 오겠지요.


어디든 로그인을 해야 입장할 수 있는 온라인 세상에서 아이디를 입력할 때마다 자꾸 까먹어 매번 아이디와 비번 찾기를 하는데 오늘 문득 아이디를 '밥통'이라고 입력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낍니다.


*위 사진은 별명이 밥통이라 저의 모습을 밥통으로 상상하실 것 같아 살짝 올립니다.

코로나 전 마로니에공원에서 문학 페스티벌을 할 때 저의 시를 낭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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