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지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12살 노령견이 살고 있습니다. 이름은 “니모” 큰아이가 어릴 적에 “니모를 찾아서”라는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해서 영화 주인공 물고기 이름을 그대로 지어주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모’나 ‘미모’로 듣고 왜 개한테 이모라고 부르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니모는 말티즈와 요크셔테리어가 합쳐진 믹스 견으로 사슴처럼 동그랗고 큰 눈이 매력입니다.
전 주인에게 두 번이나 파양을 당하고 새로 입양되기를 기다리던 처량한 신세였던 니모는 마침 눈만 뜨면 강아지 타령을 하던 아들의 소원이 이루어져 우리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뀌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겁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보며 우리를 가족으로 믿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에도 개를 여러 마리 키웠는데 그때는 집안이 아니라 마당에서 키웠고 개를 집안에서 키우는 건 니모가 처음이었습니다. 개를 좋아하지만 약간 결벽증이 있는 나는 개와 함께 동거하는 것이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해서 니모를 방에는 못 들어오게 하고 거실과 베란다에서만 지내게 했지요.그래서인지 니모는 나를 잘 따르지 않았고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남편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언제든 안방 차지를 하고 잠도 아이들 침대나 내 이불속에서 자는 서열 높은 니모님이 되었지요. 그럴만한 사건이 발생한 건 벌써 10년 전 일이네요.
이름 때문이었을까요...?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의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어찌어찌된 사연으로 사라진 아들 물고기 니모를 찾아다니는 아빠 물고기가 결국에는 니모를 찾게 되는 이야기이지요,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상황으로 펼쳐진 건 10년 전 8월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숙제하느라 바쁜 아이들과 주말 드라마를 보느라 정신이 없던 나를 대신해 남편이 자진해서 니모의 저녁 산책을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보통은 아이들이나 내가 나가지만 그날은 그냥 남편한테 맡겼지요. 정말이지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20분쯤 지난 후 남편이 당황한 얼굴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니모가 없어졌어. 산책 나간 공원에 사람들이 없어서 잠깐 풀어줬는데 사라졌어...”
“뭐라고? 장난하지 마!” 아이들과 나는 사태 파악을 못하고 남편이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니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제야 모두 급하게 집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이었고 니모를 아무리 부르고 여기저기 뛰어다녀도 나타나지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니모의 인식표가 피부에 이식하는 내장형이 아니라 목줄에 달려있는 외장형이었는데 목줄을 풀면서 인식표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우리 니모를 발견해도 주인을 찾아줄 수 없고 경찰서에서도 잃어버린 강아지에 대한 접수는 받지 않는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
남편은 그날 밤부터 천하에 둘도 없는 죄인 되었고 우리 가족은 매일 니모를 찾아서 헤매고 다녔습니다. 나는 아침에 두 아이가 학교를 가고 나면 먹지도 않고 전단지를 들고 길에 나가 여기저기 붙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울면서 다녔습니다. 잠도 오지 않았고 새벽에는 니모가 짖는 것 같은 환청을 듣기도 했습니다. 남편도 아이들도 집에 오는 즉시 바로 근처 공원과 천변 동네 곳곳으로 니모를 찾아다녔습니다. 이 소식은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의 친구들과 동네 이웃들도 모두 알게 되어 함께 니모를 찾는데 동조했습니다. 드문드문 니모와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를 보았다는 제보전화를 받았지만 매번 허탕을 쳤고, 사정사정해서 CCTV도 확인했지만 역시 허사였습니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데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합니다. 3일 이내에 찾지 못하면 영영 찾기 어렵다는 말과 유기견들을 보호하고 있는 시설이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니모를 잃어버린 지 5일째가 되던 날 우리 가족은 기진맥진 낙담했고 니모가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니모를 찾아주시길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아이들과 남편도 간절하게 기도했지요. 그때 내가 니모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달았지요. 찾기만 하면 매일 업고 다니며 구박하지 않고 예뻐만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일주일째 되는 날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양주에 있는 동물보호협회 홈페이지에 니모랑 비슷한 강아지 사진이 올라왔어! 얼른 양주로 가봐!” 나는 정신없이 동물보호 협회로 날아갔고 거기서 드디어 우리 니모와 상봉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울컥합니다. 니모는 우리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강아지가 되었습니다. 집 밖을 나가면 동네 분들이 니모의 무사귀환을 모두 축하해 주었고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기적의 강아지로 불리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니모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잃어버리기 전과 후가 반대가 되었습니다. 니모는 이제 집안에서 금지구역이 없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환대하던 아버지처럼 좋은 옷과 매일 맛있는 간식을 대령해 줍니다. 그리고 니모는 꼭 자기 방석 대신 내 이불에서 잡니다. 참 희한하게 나의 결벽증도 그날 이후로 사라졌습니다. 남편은 종종 그날을 떠올리며 살면서 처음으로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을 때가 그때라며 아이들과 내가 자신을 얼마나 냉대했는지 서러웠다고 말합니다. 가끔 남편이 장난으로 “니모 산책 내가 갈까?”하면 나와 아이들은 눈을 흘기며 “안돼!”라고 합니다. 남편은 니모로부터 접근 금지를 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