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지하철은 답답해서 주로 차가 밀려도 버스를 타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 병원까지 더 빠르고 갈아탈 필요 없는 지하철을 선택했다. 탑승 후 병원까지는 50분 정도 걸리고 병원에서도 보통 30분 이상 대기하는 것을 감안하여 요즘 마음에 끌리는 최유수 작가의 산문집도 한 권 챙겼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지하철 안은 한산하고 시원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막 책을 펼치려는데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였는데 그분도 책을 펼치고 독서 중이셨다, 사실 요즘 지하철이든 어디든 남녀노소 사람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손안에 스마트폰을 향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시간과 영혼을 갉아먹는 요물 중에 요물이다. 그러니 지하철 안에서 책을 보는 사람은 희귀하고 특별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도 책을 펼쳤지만 옆자리 아주머니가 무슨 책을 읽는지 자꾸만 궁금해졌다. 집중하지 못하고 아주머니의 책을 흘깃거리며 보았는데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동적으로 손안에 요물 스마트폰을 열어 책제목을 검색했다. 아주머니가 읽고 있는 책의 정보가 차르르 펼쳐졌다. 이런...! 내 책은 방치한 채 남의 책을 손 안의 요물로 검색하는 꼴이라니...
나는 내친김에 사람들의 모습을 슬쩍슬쩍 관찰하기 시작했다. 보물마냥 손에 꼭 잡은 폰으로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 정치기사를 열심히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 아직 마스크를 쓴 사람, 자기 이야기를 모두에게 떠벌리며 통화하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잠을 자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며 딴생각을 하는 나까지 모두 스마트폰을 꼭 쥐고 귀에는 하얀 이어폰을 꽂은 모습이었다. 옆자리 아주머니만 예외였다.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지하철 안의 풍경은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람들로획일화되며 통제당하고 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지만 모두가 다른 공간에 차단되어있다.
뾰족한 방안이나 대책은 도무지 없는 듯하다. 다만 모두 스마트폰에 정신 팔려있을 때 나라도 종이책을 보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할 수밖에 없다.
오랜 전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었던 옛날, 지하철에서 읽은 책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라는 책이 기억난다. 하루키가 지중해 연안 그리스의 여러 섬들을 여행하며 쓴 여행에세이다. 그때 그리스는 달력 그림 속의 낙원처럼 너무 아름다웠고 나는 갑갑한 지하철 안에서 지중해의 섬들을 상상하며 빛나는 태양 아래 온통 하얀 집들이 있는 해변을 걸어 다니는 몽상에 빠져 그만 내리는 역을 지나치기도 했었다.
뚝섬유원지역이다. 계속 어두운 땅속을 달리다 잠깐 땅 위의 세상으로 올라왔다. 창밖으로 파란 하늘과 몽실몽실 구름이 강물을 따라 천천히 흐르고 강물도 빛을 반사하며 인어 비늘처럼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눈이 환하다. 내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만 바라보던 사람들도 머리를 들어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어쩌면 아직 희망은 있다.
스마트폰은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지하철 안에서 다시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풍경을 꿈꾼다. 꼭 글자를 읽지 않아도 책장을 넘기는 행위만 으로도 낯설고 낭만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회색인간들에게 도둑맞은 시간을 되찾아 온 모모처럼 스마트폰에 빼앗긴 상상력과 느림의 여유를 찾아오기 위해서 나는 책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