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더위에도 뚝딱뚝딱, 징이이잉 공사소음으로 시끄러운 상가에는 또 커피집이 들어 올 예정이다. 상가마다 무슨 카페가 이렇게 많은지 어딜 가든 커피공화국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매일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는 카페인 중독자로 살고 있다.
우리 동네에는 내가 잘 가고 좋아하던 카페가 있었다. 카페 이름이 따로 있음에도 나는 사람들과 약속을 할 때면 ‘우체국 2층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체국 건물이라는 의외의 장소에 카페가 생겼는데 우체국과 카페가 묘하게 친구처럼 잘 어울려서 앞을 지날 때마다 이층 카페를 올려다보았다.
그 카페는 갤러리처럼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클래식 음악이 조용하게 들리며 넓은 공간에 비하면 테이블은 몇 개뿐으로 번잡하지 않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내가 자주 앉은 창가 자리에서 보면 손에 잡힐 듯 햇빛에 반짝거리는 나무들의 풍경이 너무나 싱그러웠다. 그럼에도 손님이 별로 없어서인지 애석하게도 얼마 안 되어 문을 닫아 버렸다.
내가 커피를 처음 맛본 건 꽤 이른 나이 초등학교 6학년쯤으로 역사가 길다. 엄마가 매일 마시는 믹스 커피 맛이 궁금해서 “엄마 나 한입만!”으로 시작해 달달한 커피 맛에 홀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또, 카페라는 장소를 처음가게된 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에 성북동 큰집에 사촌언니들을 보러 놀러 갔다가 대학생이 된 큰언니의 데이트를 따라 나간 일에서 시작되었다.
큰언니는 그즈음 미팅을 하고 자꾸 연락이 오는 상대가 별로라며 나가기 싫어하던 약속에 갑자기 작은언니와 나까지 대동하여 함께 가자고 했다. 그래서 작은언니와 나는 얼떨결에 큰언니의 데이트를 참관하게 되었고 그때 처음 가 본 카페가 바로 성균관대 앞에 있던 ‘상파울루’라는 카페였다.
작은 언니와 나는 처음 가보는 카페 풍경이 무척 설레고 신기했다. 그때는 카페들이 주로 지하에 많이 있었는데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문을 연 순간 진한 커피 향과 매캐한 담배 냄새가 섞여 약간 어지러웠고 어두운 실내에 노란 테이블 조명이 아늑하게 탁자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꿈속처럼 딴 세상이었다.
내가 주문한 음료는 핫초코였다. 사실 큰언니가 시킨 지중해 바닷물빛 같은 칵테일 맛이 궁금했지만 아직 미성년자여서 그걸 시킬 수는 없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뜨거운 코코아가 그날따라 밍숭밍숭 맛이 없었다. 빨리 스무 살이 되고 싶었지만 운명은 늘 나를 놀리는 듯달아났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오고 싶었던 상파울루를 나는 재수 할 때 더 많이 갔다.햇빛이 들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미래를 잊고 싶어 상파울루 어두운 계단을 내려갈 때면 삐걱삐걱눅눅한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두 번째로 좋아하던 카페는 삼청동에 있는'진선북카페'이다. 북카페라는 이름이 아마도 처음 사용된 카페로 기억한다. 거기는 간단한 식사도 되는 곳이어서 오래 머무르며 서가를 배경으로 잡다한 생각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한 번은 야외 테라스에 장식된 작은 화분에 꽃들이 하도 예뻐서 구경을 하는데 “꽃 좋아하시면 가져가셔도 됩니다.”하며 본인이 진선 출판사 대표라는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지금 같으면 “어머! 감사해요.” 하고 넙죽 받아왔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린애였다. 지금도 진선출판사에서 발행한 책들을 보거나 그 길을 지나갈 때면 그때 일이 떠오른다.
상가에 새로 오픈할 카페는 어떤 모습일지 슬쩍 기웃거려 본다. 문 닫은 우체국 이층 카페 같은 분위기라면 좋을 텐데... 하며 기대해 본다. 그러면 누구와 제일 먼저 약속을 하고 커피를 마시러 올까...? 생각하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