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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Mar 16. 2023

벨 에포크

호시절

이웃에 사는 친구가 딸기잼을 집에서 만들었다고, 방금 만든 잼 한 병을 들고 왔다. 아직도 따뜻한 딸기잼 병에 친구의 정성이 몽글몽글 들어있었다.

“어머! 이렇게 귀한 걸...” 어렵진 않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잼을 여간해서는 만들게 되지 않아 주로  사 먹는데 알다시피 달기만 해서 금세 물린다. 그러나 집에서 만든 친구의 잼은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나의 후각을 감동시킨다. 게 한 숟가락을 푹 떠서 먹어 보니 톡톡 딸기 씨가 씹힌다. 무료한 오후에 분홍빛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맛이다. 딸기잼을 만드는 동안 온통 잼 냄새로 가득했을 친구의 집을 떠올리니 코끝에서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가 퍼진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오래된 기억이 먼지를 털고 일어난다.

그날 엄마는 부엌에서 딸기잼을 만들고 계셨다.

우리 형제들은 뭉근하게 졸아들고 있는 잼이 얼른 되기를 안달 내며 부엌을 들락날락거렸다. 드디어 완성된 잼을 마주하며 우리는 저녁밥 대신 딸기잼을 밥숟가락으로 퍼서 빵에 발라먹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에 홀려 경쟁하듯 먹었다. 금세 빵이 떨어졌고 엄마는 뚜껑을 닫으며 내일 다시 빵을 사다 놓을 테니 학교에 다녀와서 간식으로 먹으라고 하셨다. 너무 아쉽지만 달콤한 꿈을 꾸며 내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다음날 학교에 가야 했지만 네 살, 다섯 살 터울이 지던 여동생들과 일곱 살 터울의 남동생은 딸기잼과 함께 집에 있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설 때 우리 강아지 곰순이도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배웅해 주었다. 나는 학교에 가서도 내내 잼 생각이 나서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만 기다렸다. 그리고 운동장 놀이터에서 놀다 가자고 꼬시는 짝꿍의 말도 뒤로 한 채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그날따라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어서 바람결에 묻어오고 마침 병아리 장사도 삐악삐악 나를 유혹했지만 한눈팔지 않았다.


골목 끝에 있었던 우리 집에 점점 다와 가자 살짝 열려 있는 대문사이로 내 동생과 동생 친구들의 목소리가 오락가락하며 들려왔다.

“앗!” 가까이 왔을 때 나는 보고 말았다.  문 틈사이로 곰순이 밥그릇에 층층이 쌓여 있는 딸기잼 바른 빵을. 엄마는 그새 어딜 가셨고 내 동생은 골목친구들을 불러다 후하게 딸기잼을 대접하고, 먹다 먹다 지쳐 곰순이에게도 융숭한 간식을 준 것이다.

곰순이는 잼 바른 빵에는 관심이 없는지 심드렁하게 엎드려있었다.

우앙, 내 딸기잼!” 비어있는 딸기잼 통을 붙들고 나는 울고 말았다.


온 집안에 스며들었던 달큼한 향기와 수런수런 어린 나와 동생들의 소리가 선명해지며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때는 울었는데 지금은 웃음이 난다. 나도 내일은 딸기잼을 만들어서 동생들을 보러 가야겠다. 다시 맛볼 수 없는 그 특별한 딸기잼의 추억을 선물하러, 벌써부터 쿡쿡 웃음이 나온다.


보고 싶은  내 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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