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호빵 보다 붕어빵을 좋아하는 여자는 겨울이 다 지나도록 붕어빵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버스 정류장 앞이나 골목 어귀마다 틀림없이 있던 붕어빵 천막 점포들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붕어빵 대신 타코야끼를 파는 트럭이 문전성시를 이룰 뿐이었다.
붕어빵 찾아 삼만리를 할 수도 없고, 붕어빵의 계절은 상실되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몽글몽글한 기억 속에서 붕어빵의 전설을 떠올려본다. 서른을 앞둔 가을, 아는 동생으로부터 소개팅 주선을 받게 되었다. 그때는 서른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면 노처녀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붙었고 집에서도 결혼을 독촉받고 있었다. 여러 번 남자를 소개받았지만 여자의 결혼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여자는 결혼조건 중 한 가지 조건은 꼭 충족되어야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바로 키 큰 남자를 고집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여자는 “키가 아담하시네요.” 소리를 질리도록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후세를 위해서라도 키가 큰 사람을 꼭 만나야 했다. 사춘기 때 감명 깊게 읽은 책도 ‘키다리 아저씨’이다. 그렇지만 필수조건인 키와 몇 가지 충분조건에 해당되는 남자는 죄다 TV드라마에만 나오고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소개팅날도 별 기대 없이 꿈지럭거리다 30분이나 늦었다. 그런데 남자는 미안해하는 여자를 보며 화내지 않고 곰돌이 푸처럼 환하게 웃어주었다.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는데 남자의 훌쩍 큰 키와 비율 좋은 긴 다리가 여자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안심하고 두 번째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몸살감기로 콕 박혀 앓고 있는 여자의 집으로 남자가 찾아왔다. 집 앞이니 잠깐 보고 싶다고 했고, 여자는 아파서 세수도 안 하고 멀건 얼굴로 나갈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런데도 돌아가지 않고 꼭 줄게 있으니 잠깐만 나오라고 조르는 바람에 여자는 할 수 없이 부스스한 채로 남자를 만나러 나왔다. 그런 여자에게 남자가 가슴에서 하얀 봉지를 꺼내며 “이거 우리 회사 앞에서 파는 건데 엄청 맛있다.” 식을까 봐 품에 꼭 안고 왔다며 내민 것이 바로 ‘황금잉어빵’이었다. 아직도 따뜻한 붕어빵을 손에 들고 꼬리부터 천천히 뜯어먹으며 여자는 따뜻한 이 남자랑 결혼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고작 붕어빵에 넘어간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남자는 결혼 후에도 집에 올 때 빈손으로 오는 일이 거의 없다. 항상 아내와 자식에게 줄 맛있는 간식을 사 오는 다정한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폭풍 잔소리가 점점 여자의 참을성을 시험하지만 그래도 옛정을 생각하며 못 들은 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