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오는 날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나는 꽤 오랫동안 믿었는데 일부러 늦여름에 봉숭아물을 들여 오래가기를 바라며 다홍빛물이 가느다랗게 남아있는 손톱을 자르지 못하고 첫눈이 언제 오나 창밖만 바라보았다
첫눈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가 모두가 잠든 새벽에 몰래 오거나 아주 잠깐 잊고 있을 때 살짝 왔다가 금방 그치고 이제는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첫사랑도 없고 봉숭아물도 들이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첫눈을 기다리는데 그건 진홍빛 그리움 같은 것이어서 너의 휘파람 소리처럼 쓸쓸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너를 꿈에서 보는 것처럼 설레고 아쉽기만 했다
첫눈은 차마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을 닮아서 감질나고 쉽게 녹아버리지만 콧등에 떨어진 처음 눈송이의 차가운 촉감은 상처처럼 오래 남아서 나는 아직도 첫눈을 기다리는데 저기... 첫사랑 같은 첫눈이 쿵쿵 숨차게 달려온다
지금 우리 동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처럼 뿌옇게 흐립니다. 눈 예보와 나의 예감이 오늘은 어긋나지 않길 바라며 첫사랑 같은 첫눈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