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부. 도시락 추억
나는 급식 세대가 아니어서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내내 도시락을 가지 다녔다.
거리가 있는 학교들을 다녀서 매일 만원 버스를 탔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무거운 책가방과 번거로운 짐이기도 한 도시락은 늘 함께였다.
김치국물이 새어 책을 적시고, 가방밖으로 국물과 냄새가 흘러나와 버스 안에서 부끄러워지는 일도 많았다.
참 다행스럽게도 꼼꼼한 엄마 덕분에 나는 김칫국물이 흘러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보통 네모난 반찬통에 쿠킹포일로 칸을 나누어 반찬을 서너 가지 정도를 넣고, 거버이유식 병에 김치를 꼭 볶아서 따로 넣어주셨다.
간혹 남대문 도깨비시장에서 사 온 소시지 반찬도 넣어주셨고, 계란말이가 반찬인 날은 짭짤한 반찬을 넣어 밥과 반찬의 비율을 잘 맞춰주셨다.
그런데 주변에 아기가 있는 집도 없었는데 작고 귀여운 거버이유식 유리병은 어디에서 났을까?
밀폐용기가 마땅치 않았던 때였으니 도깨비 시장에 갔을 때 일부러 사셨을지도 모르겠다.
섞임 없이 반듯반듯 나뉜 구절판 같은 내 반찬통을 열면 친구들이 “와! 예쁘다” 그렇게 말했었다.
엄마는 도시락 예술가였다.
도시락 중의 최고의 맛은 겨울철 교실 한가운데에 있던 난로 위에 올려졌던 따끈한 도시락 밥이었다.
겨울철엔 따로 밥만 담는 양은 도시락통을 사용했다. 그래야 난로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양은은 라면냄비와 같은 얇은 알루미늄 재질이어서 열기가 금방 전달이 되어 자칫 때를 놓치면 밥이 타버리기 일쑤였다.
“탄내 난다. 도시락 뒤집어라”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난로 가에 앉은 아이들이 장갑을 끼고 도시락들의 위, 아래 위치를 바꿔줬다.
아이들은 내 도시락의 위치에 집중했다. 지루한 수업 중 공식적으로 딴생각을 해도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도시락이 기가 막히게 딱 알맞은 따끈하고 맛있는 밥이 될지 탄밥이 될지의 밥솜씨는 난로가 아이에게 달려 있었다.
도시락 위치를 바꿔주는 아이는 친한 친구의 도시락을 슬쩍 좋은 위치에 놓아주기도 했다.
넷째 시간의 끝과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부스럭부스럭..
장갑을 끼고 준비했다가 종이 울림과 동시에 자기 도시락을 착착 순서대로 찾아갔다.
과연 내 밥은 어떻게 됐을까?
두근두근 뚜껑을 열었을 때 살짝 눌은밥을 만나는 것은
포춘쿠키(Fortune cookie)를 열었을 때 좋은 글귀가 나오는 행운과 같았다.
드라마에 나오고 식당에서 파는 이것저것 넣어 비비거나 흔들어 먹는 도시락은 먹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왜 유행이 된 건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누군가의 추억에서 시작이 되었을것 같다.
학급에선 둘째 시간이 끝나면 도시락을 꺼내서 먹는 아이들이 꼭 한두 명은 있었다.
간이 쥐눈이 콩만 한 나는 한 번쯤 해보고, 절대 하지 않았다.
선생님께 혼이 날까 불안한 마음으로 먹는 도시락은 불편하고 체기가 느껴졌었다.
선생님과 도시락의 관계는 미묘해서 어느 선생님 시간에 먹을 것인지 서로 정보교환을 하기도 했다.
너그러이 넘어가는 선생님이 계신가 하면 도시락 검사를 해서 벌을 세우는 분도 계셨다.
아이들에겐 선생님과 도시락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시험문제의 출제 비중만큼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무서운 선생님의 수업시간 전에도 먹는 아이는 꼭 있었다.
셋째 수업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소리를 치셨다.
“누구야! 밥 먹은 녀석!”
“창문 열어”
고 2 때 짝꿍이었던 은영이는 꼭 둘째 시간 후 밥을 정확히 줄을 그어 반절만큼 먹고, 나머지는 점심시간에 나와 함께 먹었다.
밥을 먹고 셋째 시간에 서서 수업을 받기도 했는데 뒤로 걸어 나가며 나를 보고 씩 하고 웃었다.
은영이는 여름엔 고구마 줄기, 다른 계절엔 미역줄기를 반찬통 한가득 싸왔었다.
대부분의 날에 한 가지를 가득 넣어왔는데 늘 은영이는 참 맛있어 보이게 밥을 먹는 아이였다.
점심시간이면 우린 반찬을 공유했고, 서로의 반찬이 맛있었고 모자람이 없었다.
그 줄기 반찬들을 그때 처음 먹어봤고, 너무너무 맛있어서 엄마에게 해달라고 했었다.
엄마도 처음 해보셨고, 그 반찬이 좋아진 나는 지금도 종종 만든다.
은영이 와는 고2 이후에 자주 만나지 못했고, 졸업 이후엔 만난 적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약속이 생겨 양재동 T.G.F에 갔다가 우린 우연히 마주쳤다.
이후 자주 전화를 하고 만나기도 했다.
은영이는 자신의 주치의였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우리 집 근처에 생긴 병원 지점으로 가셨다며 내게 선생님을 소개해줬다.
그 선생님께 다니며 아이 둘을 낳았다. 참 신기한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난 은영이는 아이를 둘을 낳았다는데도 여전히 경쾌하고 밝은 고2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내가 멀리 떠나게 되어 우린 다시 소식이 끊겼다.
각자의 시간을 살며 오십을 넘어 환갑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지만 언제, 어딘가에서 변치 않는 고 2의 모습으로 꼭 다시 만날 것 같다.
“은영아, 잘 지내고 있니? “
https://brunch.co.kr/@fca6aff9f1cc484/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