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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Jan 19. 2024

전 찌개

사치스러운 전찌개

​전찌개는 남은 음식 활용 요리이니 고추장찌개처럼 해도 되고 취향대로 하는 것이지 레시피가 필요도 없는 음식이다. 나의 취향은 전이 기름지므로 새우젓을 이용한 개운한 맛의 전찌개를 좋아한다.

맛있는 전찌개의 포인트는

1. 국물을 너무 많이 잡으면 맛없는 음식이 된다. 재료들을 넣고 ‘반신욕 인가?’ 생각되는 정도로 잡으면 된다.

2. 상에 놓일 때까진 예쁘게 놓인 전이 흐트러짐 없을 것

두 가지만 지키면 된다.

성묘를 다녀온 후여서 간단한 동태전과 호박전으로 전찌개를 만들었다.

계란물이 남아서 쪽파와 버섯을 넣은 꼬지 전과 비슷한 아이디어전을 부쳐 두었던 것을 추가했다.

두부 전과 동그랑땡이 들어가면 아주 맛있지만  공을 덜 들였으니 맛이 덜함은 감수해야 한다.

납작한 전골냄비의 가운데에 양파를 반개쯤 썰어 넣고 가장자리로 전을 둘러 담는다. 가운데 양파 위로 새우젓 반술쯤과 고춧가루 반술 정도를 올려주고, 제사 때 탕국 국물을 육수로 쓰면 좋은데 마침 남아있는 쇠고기 뭇국 국물과 물을 반반 섞어 재료들의 7홉쯤 붓고, 재료가 흐트러지지 않게 중불정도로 보글보글 끓인다. 전찌개는 흐트러짐 없이 화려한 자태로 상에 놓여야 진가를 발휘한다.

마구 젓거나 센 불에 부글부글 끓여서 전의 껍질이 벗겨지고 뭉그러지면 낭패이니 은근하고 조심히 요리하는 게 중요하다.

재료들이 따끈해지고 새우젓 간이 잘 퍼지면 되는 정도이니 한 5분 정도 끓이고 간을 보아 부족하면 소금을 조금 넣어준다.

성묘상에 꼭 놓는 문어가 있어서 가운데 얌전히 올리고 쪽파와 청양고추 한 개도 어슷 썰어 올리고, 오래 끓으면 질겨지니 1~2분만 끓여주면 완성!


전찌개는 자주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우리 집엔 남는 전이 없으니까.)

전이 남아 골치라는 말은 참 이상하게 들린다. 냉동실에 두었다가 데워먹어도 언제나 맛있는 음식인 전이 처치곤란일 수는 없다.

예전에 집에서 차례와 제사를 지낼 때 열다섯 분의 어른 친척이 오시면 제사를 모신 후 충분한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실 땐 한 가정에 한 꾸러미씩 챙겨서 싸드렸다. 시어머님께 그렇게 배웠으니 나는 배운 대로 했다. 그러자면 허리가 부서지도록 전을 많이 부쳐야 했었는데 몇 해가 지났다고 그 양이 생각이 나지도 않지만 전감 재료들이 냉장고 한 칸 넘게 가득 차 있던 어렴풋한 기억이 난다. 엄청난 양의 전을 부쳐도 우리 집엔 전이 늘 모자라고 귀했으므로 전찌개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음식인지 모른다.

이번 성묘 음식을 준비하면서는 전찌개를 끓이기로 처음부터 용의주도한 계획을 했고 오랜만에 전찌개를 먹을 수 있었다.


나에게도 명절 증후군이 있었고, 집에서 지내는 제사를 안 지낸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명절이 돌아오면 버릇처럼 허릿병이 도진다. 이것은 처음엔 시어머님의 도우미로 나중엔 혼자 모든 걸 관할했던 시간까지 통틀어 20년 이상 제사를 지낸 장남 외며느리의 후유증인 것도 같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고생한 며느리였던 연로한 시어머님의 도움은 스스로 마다했으니 일할사람은 어차피 나 혼자이므로 ‘동서가 왜 안 오지? 왜 나만 일하지?‘ 그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없어서 오히려 싫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명절이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를 외치던 나였지만 며칠간 무거운 장을 보고 준비를 하고 손님치레를 하고 후의 마무리 처리까지의 노동에 대한 몸의 조건반사작용은 어쩔 수 없었다.


아버님은 큰 결단을 내리셨다. 어느 날 “그만하면 잘했다. 제사를 그만 지내라.”라고 말씀하시고 작은댁과 친척들께 친히 모두의 이해를 구하셨고, 두 분은 백중날에 절에 가셔서 조상님께도 고하셨다. 아마도 힘든 과정을 겪으셨을 것이고 나는 명절에서 자유로워졌다. 아버님의 결단은 어쩌면 시어머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근황을 알고 쑥 자란 조카들을 보는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쉽기도 하다. 제사를 없애니 서로 바쁘게 사느라 다 같이 모이는 자리는 잘 만들어지지가 않는다. 남편은 동생들을 챙기지 못하는 자신의 책임이라며 때때로 자책을 하기도 하며 우린 각자 가족끼리만 즐겁게 지내면 되었다.

그리곤 코로나 와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우린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친히 없애신 제사를 부활시키진 않고, 간단하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나들이하는 마음으로 성묘를 다니고 있다.


명절 증후군을 겪는 누군가가 괴로움에 휩싸여있다면 절대 모른 척하면 안 된다. 당연시하지 말고, 그 수고로움을 반드시  생색내며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현해야 한다. 표현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다. 명절 증후군을 겪는 당사자 역시 스스로를 아프지 않도록 보호할 의무가 중요하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예쁘게 만드는 일이 좋다는 구실을 붙여 스트레스를 감소시켰었다. 무거워지려는 마음을 띄워볼 어떤 구실이라도 찾아보자.

그래서 제사와 명절뿐 아니고도 언제든 모두가 돌아가신 분을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길어진 글을 마친다.



글 중 <7홉> 이란 단어가 나온다.

이 말은 외할머니가 잘 쓰시던 말이고 엄마도 잘 쓰던 말이다. 다른 수량도 아니고 꼭 7의 뒤에 을 붙이셨다

“7홉 정도 넣어라~”

정확한 양은 모르겠으나

‘너무 많지 않게’ , ‘반이 좀 넘는 7할’

그 정도로 내 머릿속에 있는 7홉의 정량의 표시다.

70%를 넣으라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찰떡처럼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된다.

7홉은 나의 기억과 추억 안의 말이다.



엄마의 손맛을 남기는 요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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