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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Jan 23. 2024

비법 칼국수

면 장인과 육수 장인 이야기

​비법 칼국수 만들기
(1인분 기준, 육수 약 800ml)

칼국수 면(생면 또는 건면)
멸치 육수:닭육수=1:1
마늘 2알(얇게 편으로 썬다)
국간장 1술, 소금,

고명 : 육수 낼 때 삶은 닭 살코기, 파, 청양고추, 후추

1. 두 가지의 육수를 섞고 마늘을 편으로 썰어 넣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백숙 국물 이용 가능)
2. 육수가 끓는 동안 칼국수 면을 소금으로 간을 맞춘 물에 따로 삶아서 헹구지 않고 그대로 국수만 건져 그릇에 담아둔다. (국수를 따로 삶아야 깔끔한 칼국수가 된다)
3. 칼국수  위로 국물을 붓고, 찢어둔 닭고기와 파, 청양고추를 취향껏 올려준다.

*칼국수의 육수는 양을 넉넉히 만드는 것이 좋다. 밥을 말고 싶어 질 테니 “


​“난 칼국수가 좋아요”

요즘처럼 추운 날에 뜨끈한 칼국수를 후루룩 한 대접 마시듯 먹고 나면 후끈후끈해져서 꽁꽁 언 몸이 부들부들한 칼국수처럼 긴장이 풀어진다.

칼국수는 저렴하면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고, 예전엔 편안하고 수수한 칼국수집이 흔했는데 요즘은 칼국수집이 별로 없다. 물가의 상승도 있지만 솔직히 나는 칼국수가 비싼 값을 치러야 하면 먹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이제 옛날 얘기로 넘어간다.


때는 88 올림픽이 열리던 시기에 회기동 경희의료원 바로 옆 좁은 골목엔 작은 칼국수집이 있었다. 이름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아주 평범한 문패에 적힌 이름 같은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린 늘 “칼국수집 가자” 그랬기 때문에 그냥 칼국수집이었다. 점심시간이면 당시에 의사 선생님들도 줄 서는 맛집이었다.

당시 물가는 학생식당은 800원~2000원 정도였고, 분식점 또또와의 쫄면은 2500원, 교차로의 순두부 백반은 3000원이었다. 그린하우스 빵집의 통식빵 1/3쯤을 잘라 크림을 잔뜩 올리고 전자레인지에 땡 돌려주면 맛이 일품이었던 크림식빵은 얼마였더라? 아무튼..


메뉴는 두 가지

멸치 칼국수 3000원, 닭칼국수 3500원.


키가 크고 무뚝뚝한 주인아저씨는 칼국수 면을 손반죽하고 밀대로 밀어 착착 접어둔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키가 작은 무뚝뚝한 아주머니는 눈 맞춤으로 대답을 하고 화로옆 도마에서 국수를 썩썩 썰어 바로 국물에 넣어 끓이셨다. 신기한 건 대답을 안 하는데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주문에 착오가 생기는 걸 본 적이 없다.

미리 반죽하여 두었다가 커다란 상에서 밀가루를 뿌리고 기다랗고 반질하게 윤이 나는 홍두깨로 밀어서 만들었던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우리 집 면과 비슷했다.

아저씨는 면 장인이셨고 아주머니는 육수 장인이셨다.

닭칼국수엔 엄청난 순살 닭고기가 올라가 있었고 국물은 기름기 하나도 없이 담백하면서도 진했다. 멸치칼국수는 아무것도 안 들었는데 멸치의 향이 아주 구수하고 비린내 없이 개운하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국물이 정말 맛있었다. (고향의 맛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며칠 내로 또 올 거면서 늘 닭칼과 멸칼이 고민되었다.


가게주인은 무뚝뚝한 가게간판처럼 인사도 없고 표정도 없었다. 손님에게도 두 분도 서로 말이 없지만 업무분담은 철저히 잘하시는 듯 보이는 그런 분들이었다. 어떤 날은 두 분이 싸우셨는지 분위기가 더더욱 안 좋았다. 작은 아주머니의 눈꼬리는 올라갔고, 키 큰 아저씨의 입꼬리는 내려가 있었다. 두 분의 대화를 들은 기억이 없어서 부부인지 아닌지도 애매했고, 그런 분위기와 화난듯한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아무리 맛집이어도 손님을 불편하게 하거나 줄까지 서서 먹는 것은 안 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갔던 유일무이한 음식점이었다.

그분들은 말이 없을 뿐 부지런했고, 불친절하지 않았다.

한 사흘의 한 번쯤 나의 점심은 그 칼국수 집이었다.

주인이 날 알아보는지 의심하며 나는 그 가게의 단골이라 스스로 생각했는데 내게 이따금 아주머니는 살짝 미소를 보이기도 하실 정도가 되었었다.


한 2년쯤 다니고서야 어느 날

때가 지난 시간이라 다른 손님이 없이 혼자 멸치칼국수를 먹던 날이었는데 숫기 없던 나는 무슨 용기였는지

“어떻게 이렇게 칼국수가 맛이 있어요?”

그랬더니,

“멸치 칼국수엔 멸치육수와 닭육수를 반반 넣어 “

그러시는 거다.

나한테 말을 하시다니 감동이었다.

그날 더 집요하게 물었어야 했는데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서 그것으로 질문과 대답의 끝이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 갔으나 칼국수 끓이는 법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나는 뭔가 그분들의 장사 노하우를 지켜드려야 할 것 같은 의리감을 느꼈다.

이후 달라진 것은 아저씨가 나를 보고 웃으시며 인사를 하셨고, 아주머니는 내 그릇에 칼국수 양을 아주 많이 주셨다.

때론 나에게 “예쁜 아가씨, 왔네 “ , “오늘 그 친구는 왜 안 왔어?”  가끔은 아주머니의 아저씨를 탓하는 구시렁거림도 들려주셨다.  두 분은 부부가 맞았고 경상도분이셨다. 그렇게 안부를 물으시며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셨다.


세월이 지나 결혼을 하여 먼 지역에 살게 되고 아이들 키우고 그러다가 한 15년쯤 뒤에 찾아갔을 땐 그 칼국수집은 아쉽게도 없어졌다.

멸치 칼국수엔 멸치육수 반, 닭육수반이었을 것이고, 닭칼국수엔 고기가 수북하게 올라간 진국 닭칼국수는 내겐 참 그리운 맛이었다. 그 집이 그리워질 때면 아주머니가 슬쩍 던져주신 비법을 참고하여 멸치육수 반, 닭육수 반인 나의 칼국수를 끓인다.

사실 이젠 정확한 맛이 기억나지 않고 내 상상 속의 맛일 것 같다

칼국수를 먹자고 한 번에 두 가지 육수를 내는 일은 어려우니 닭백숙을 끓이는 날에 육수와 살코기를 남겨두었다가 비법 칼국수를 만든다. 엄마의 홍두깨를 가지고 있지만  가지고만 있고 시판 면을 사용한다.

아마 안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먹고나면 백숙국물을 넉넉히 만들고 남겨두게 될 것이다.

그분들은 어디로 가셨을까?

내 20대를 따뜻하게 채워준

그 무뚝뚝한 모습 그대로 계셨으면 좋겠다.




모든 레시피의 궁금한 점은 댓글 남겨주시면 성심껏 답변드리겠습니다.

제가 요리선생님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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