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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Aug 21. 2024

푸른 산호초

펭수 짱!


공연 중 뉴진스가 부른 노래인데 진짜 희한하다며 중독성 있어 자주 본다고 아이가 보여주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요즘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가 대유행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아이돌은 누구였더라?‘

전영록? 송골매? 소방차?

오빠부대란 신드롬을 일으켰던 조용필?

조금 후반으로 가면 이선희, 이문세, 이상은, 이상우, 변진섭, 조정현, 김건모, 01OB, 김민우, 동물원, RE.F.....

좀 젊은 감각이었지만 아이돌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7080의 시대는 지금 들어도 참 좋은 가수와 좋은 노래가 많았지만 우리나라엔 아이돌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가수였던 이수만은 그때부터 엔터테인먼트와 아이돌 육성의 꿈을 키웠을까?


우리나라의 7080 시대는 자유롭고 감성 돋는 시대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실은 사회전반에 걸쳐 아주 조심스러웠다.

대중문화는 심의를 강하게 적용하여 한 단어 만으로 혹은 불순한 의미가 연상된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금지되는 책, 영상, 음악들이 많았다.

맨발의 박세리가 샷을 날리던 순간에 흘러나오며 IMF 시대를 살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처럼 틀어주던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포함한 얼마 전 고인이 된 김민기의 곡들은 대부분이 금지곡이었다. 그는 금지의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름다운 곡들을 만들어 냈고, 희망을 주었다.

그렇다고 행동에 옮긴 김민기만이 훌륭한 음악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심의와 금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한 풍자의 글을 쓰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갖은 많은 음악인들이 있었다.

멈추고 싶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 금지의 테두리를 넘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그 다양한 모든 노력이 세월을 지나며 현재의 세계를 홀릭하게 만들고 있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결실이 된 것이다.


당시 음반의 마지막엔 건전가요가 반드시 들어가 있었다.  

때 맞춰 멈추지 못하면 감성에 취해있다가 마지막 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오며 모든 감정을 말끔하게 리셋시켰다.

건전가요라는 이름을 달고 흘러나왔던 것이 정작 금지곡이 되었어야 할 노래였고, 그것이 아이러니의 결정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랜 후의 일이었다.

또한 70, 80년대의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는 정식으로 교류가 될 수 없었다.

한국과 일본은 노골적으로 아주 불편한 관계였으니 일본의 노래가 유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두 나라는 많은 교류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도 자유란 테두리 속에서 진정한 의미는 전혀 변하거나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그 시절의 건전가요처럼 눈속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일본의 것을 배척하지는 않는다.

동숲 게임은 코로나 시기의 친구였고, 영화 안경을 참 좋아한다. 얼마 전부터는 하루키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푸치니의 나비부인 오페라가 아주 불편했다.

푸치니는 한국인이 아니었으니 객관적인 예술의 시각으로만 보더라도 구성이 불편하여 그 멋진 아리아를 굳이 듣지 않는다.

최근은 ott 덕분에 본방송으로 tv를 볼 일이 거의 없고, 더군다나 공정성 떨어지는 공중파 방송을 켜는 일이 없다.  

소식으로 듣게 된 8.15 광복절의 공영방송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눈속임조차도 하지 않는다.

관리비에 포함되어 나오는 시청료를 내고 싶지 않아 절차를 알아보니 꽤나 어렵다.  

안될 것 같다.


다시 대중음악이야기로 돌아오자.

나는 대중음악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본이 가수의 분야 중 아이돌 형태를 시작한 나라였다고 볼 수도 있다.

당시 일본의 아이돌 가수인 마츠다 세이코는 정식 교류 형태가 아니었음에도 돌아 돌아 뚫고 들어올 만큼 특별했고, 남학생들 사이에서 대유행을 했다.

아마도 아버지의 일본 출장길에 부탁을 했었는지 오빠의 카세트테이프로 나도 처음 듣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시대의 우리에겐 미국만큼이나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환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노래를 드러내어 듣거나 부르지 않았지만 들뜨게 만드는 선진국의 그 멜로디는 남녀 상관없이 매력에 빠지게 했다.

나는 푸른 산호초 이외의 아는 일본 노래가 없다.  

“무슨 일본사람 노래를 듣고 그래!”

건전가요에 한껏 속아있던 나는 그렇게 말했다.


유일하게 아는 40여 년 전 일본 최고 아이돌의 노래를 우리나라 최고의 아이돌이 부르다니 세상일이 참 재밌다.

신기한 마음에 영상을 두어 번 보고 나니 원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줄을 타고 귀찮은 것들이 자꾸만 따라붙는다.

스토커 같은 알고리즘이 참 짜증 난다.

불편한 것들과 함께 뜬 영상으로 펭수가 부른 푸른 산호초를 듣게 되었다. 정말 중독성 있다.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찰떡처럼 잘 부르는지 뉴진스에겐 미안하지만 내 귀엔 펭수가 원곡과 더 비슷한 것 같다.

[210Cm 라이브] 펭수를 열심히 보니 펭수가 스토커처럼 따라온다.


”휴, 고약한 스토커로부터 벗어났다. 펭수는 최고다! “


조금 모자란 반세기의 세월이 지난 지금 분명 두 국가의 위상도 바뀐 위치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화가 세계를 열광케 만드는 나라가 된 것이 참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여전히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태되고 있는 부분도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심의 기준이 높은 시대도 아닌데 지난주부터 만지작 거리던 이 글의 발행이 머뭇거려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이 글도 내 글인 것도 할 수 없지.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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