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 참깨는 사랑이었음을..
볶음 참깨가 똑 떨어졌다.
깨는 대부분이 수입산이며 국산 참깨는 무척 비싸다.
참기름은 아무거나 먹기도 하는데 참깨는 꼭 국산이어야 한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옆집 참깨가 진짜 국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믿고 사는 세상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슬프기도 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나는 믿고 가는 상점을 못 간 지 오래되어 화룡점정 같은 볶음참깨가 반찬에서 사라진 지 한 달은 되었다.
집에서 볶은 참깨를 먹어본 것은 무척 더 오래된 일이다.
어릴 적 엄마는 참깨 볶는 것이 무척 까다롭다고 하셨다. 그 시절에도 참깨금이 비쌌는지 한알도 아까우니 흘리지 않도록 씻을 때 조심해야 하고, 불의 조절도 잘해야 하며 서서히 오랫동안 그러나 재빠르게 휘저어야 골고루 잘 볶을 수 있다고 했다.
뇌리에 박힌 그 말은 깨 볶기에 엄두가 안 나게도 했지만 언제나 엄마가 볶아서 한통씩 주시니 아까운 줄도 귀한 줄도 모르고 헤프게 사용했다.
“엄마 볶은 깨가 떨어졌어!”라고 말하면 내가 오십이 넘도록 고소한 참깨를 풍요롭게 쓸 수 있도록 해주었던 엄마가 이젠 안 계신다.
지금은 볶음 참깨를 사 먹는다.
비싸지만 국산 볶음 참깨를 사서 쓰는데 가격을 생각하니 자꾸만 손이 오그라들며 조금씩 사용했다.
조금씩 사용해서 그런 건지 고소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언젠가 베카의 엄마께서 애써 키우시고 손수 볶은 믿음직스러운 참깨를 보내주셨다. 세상에 그렇게 고소할 수가!
“맞다. 엄마가 집에서 볶은 참깨는 진짜 고소했지 “
아까운 줄 모르고 플렉스 하던 엄마의 볶음참깨가 떠올랐다.
집에서 볶아볼 생각으로 볶지 않은 생 참깨를 사 오긴 했으나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더웠다.
어쩌면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나는 첫 번째 참깨 볶기를 여름방학숙제처럼 구석에 밀어두었다.
드디어 큰 일을 벌였다. (참깨 볶기)
동동 물에 뜨는 참깨를 체위에서 살살 씻어 물기를 빼고,
마른 팬을 살짝 달군뒤 참깨를 볶기 시작했다.
축축한 젖은 참깨가 점점 물기가 마르기 시작한다.
때글때글 따로 놀기 시작한다.
톡톡 하나씩 튀기도 하니 불을 줄였다.
킁킁 고소한 향기가 코로 들어왔다.
납작했던 깨가 통통해지고, 노릇해지며 바삭한 소리를 냈다. 됐다!
잠시 식혀 준 후 한 꼬집을 집어 입안에 털어 넣으니 고소하다.
다 식은 볶음 참깨를 깨끗이 닦아둔 고소했던 땅콩버터 통에 담으니 양이 꼭 맞았다.
한 톨도 흘리지 않고 담은 후 습기방지용으로 냅킨을 반듯하게 접어 맨 위에 올리고 뚜껑을 꼭꼭 닫았다.
또다시 더 어릴 적 고소한 볶음참깨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가 한참을 불 앞에 서서 볶아 볶음참깨가 완성이 되면 나를 부르셨다.
“그사이야, 이리 와봐~”
엄마는 귀한 볶음 참깨 한 꼬집을 입안에 넣어주셨다. 또 한 꼬집, 또 한 꼬집.
목이 막힐까 조금씩 입안에 넣어주셨고, 그 맛은 최고의 고소함이었다.
“정말 고소하고 맛있지? 그래서 깨소금 볶는다고 하는 거야 “
엄마와 내가 깨소금을 볶는 그사이에 다 식은 참깨볶음 삼분의 이쯤은 참깨통에 한 알도 흘리지 않고 담은 후 뚜껑을 꼭 닫아 고소함을 가두었다.
남은 삼분의 일은 빨간 플라스틱 절구에 돌돌 갈아 고소한 깨소금이 되었다.
처음으로 나는 한참을 서서 타지 않도록 불조절을 하며 깨를 달달달 볶았다.
깨를 천천히 이리저리 젓다 보니 팬 안에서 참깨 하트가 만들어졌다.
아! 볶음참깨는 엄마의 참사랑이었음을 이제야 느낀다.
작은 종지에 담은 깨알은 모두 몇 개나 될까?
세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식을 향한 무한 사랑을 하신 엄마 마음의 개수 같다.
오랜 시간을 둔 후 새겨진 엄마의 묘비에 들어간 “무한 사랑”이라는 단어는 오빠에게서 나왔다.
오빠는 또 엄마와 어떤 깨 볶는 것 같은 무한사랑을 느끼는 추억이 있었기에 그 단어가 떠올랐을까?
49제를 마치고, 스님이 내게 말씀을 하셨다.
“보살님은 참 좋은 분이었어요. 한 번도 아들 딸에 차별이 없으심에 감동했었습니다”
그 말씀은 아들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고 엄마를 오해했던 어리석은 나를 정신이 들게 했다.
나는 한가득 담아준 볶음참깨 통만 한 크기의 사람이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작은 종지만한 사람이 된 나는 최소한 이제 깨를 볶을 줄 아는 사람은 되었다.
“나도 이제 깨를 볶을 수 있어. 엄마, 걱정 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