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고기 넣은 고추장찌개를 좋아해!
고추장 찌개.
어느 날 아이가 친구와의 대화를 이야기한다.
“글쎄, 오징어랑 새우 같은 해물을 넣고 끓이는 고추장찌개가 맛있다고 했더니 ㅇㅇ이가 깜짝 놀라는 거야. 자기는 그런 고추장찌개를 먹어본 적이 없다며 고추장찌개는 고기 넣고 끓이는 거래. 내 생각엔 고기가 들어있으면 아무래도 이상할 것 같은데.. 그렇지. 엄마? “
“고추장찌개는 고기를 넣고 끓이기도 해.”
“정말?”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바로 내가 그 이상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고추장찌개엔 소고기가 들어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상하다. 내가 끓이는 고추장찌개에 언제부터 오징어와 조개, 새우가 들어있었던 거지?
결혼 후 시댁에서 만난 시어머님의 고추장찌개엔 각종 해물이 들어있었다.
특히 가을 무렵에 맛조개를 넣어 끓이신 고추장찌개는 진한감칠맛과 달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막대기처럼 생긴 맛조개를 소금물에 담가 숟가락을 하나 넣으시더니 깜깜하게 해야 조개가 제대로 해감을 한다고 하셨다. 검은 비닐봉지로 푹 덮어 해감한 후 깨끗이 씻으셨다. 정말 모래알 하나 씹히지 않았다.
“얼마나 맛있으면 이름이 맛조개겠니?” 조개를 넣은 고추장찌개가 처음이라는 내게 시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고추장 듬뿍과 된장도 조금 넣어 풀고 감자와 호박, 양파를 넣어 끓이다가 감자가 반쯤 익으면 마늘 다진 것과 맛조개와 두부를 넣는다. 맛조개가 알맞게 익으면 어슷하게 썬 파를 넣어 완성된다.
(조개류는 너무 오래 끓이면 질겨지고, 단맛이 없어진다)
시어머님의 고추장찌개에서는 달달하고 구수하며 탑탑한 맛이 났다.
엄마의 음식을 먹고 저만큼 쑥쑥 키가 큰 남편은 해물이 들어간 고추장찌개를 좋아한다.
엄마의 고추장찌개는 마치 소고기 스튜처럼 쑹덩쑹덩 썰어 넣은 소고기가 들어있었다.
국이나 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 후 칼등으로 통통통 두드려 표면에 골고루 잔칼집을 주었다. 그렇게 해야 육수가 잘 우러나고, 고기에도 간이 잘 배어 맛있다고 한 번 더 손이 가는 방법으로 해서 넣으셨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조금 넣어 국물이 팔팔 끓을 때 고기를 넣어 육수가 잘 우러나도록 끓인다. 육수가 우러나면 감자, 양파를 넣고 끓이다가 감자가 반쯤 익으면 다진 마늘과 호박, 두부, 느타리버섯을 넣어 한소끔 끓여 호박의 식감이 살아 있을 때 파를 넣어 완성된다.
(가끔 콩나물을 넣으시기도 했는데 그 또한 시원하고 맛있다.)
엄마의 고추장찌개는 매콤하면서도 고소하고 육향이 나면서도 깔끔한 맛이 났다.
엄마의 음식을 먹고 튼튼하게 자란 나는 고기가 들어간 고추장찌개를 좋아한다.
얘기는 간단하다. 고기 좋아하는 집과 생선 좋아하는 집이 사돈 간이 되었다.
엄마는 비린내를 싫어해 어릴 적에 집에서 생선음식을 만드는 날이면 고사리손으로 직접 수저를 닦고, 혹여 비린내가 남았을까 장독대위에 올려 쨍한 햇볕에 말리셨다고 한다. 유난을 떤다고 친할머니께 야단을 맞기도 하셨다고 했다.
생선 요리는 최대한 비린내가 안 나도록 조리를 하셨고, 언제나 팔팔 끓이는 소독의 과정을 거치는 설거지를 하셨다.
시어머님은 피난길에 머물게 되신 서해안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시어머님은 비릿한 어물의 향기가 나야 제맛이라고 하셨다. 자연스럽게 생선과 해물의 맛에 익숙해지고 좋아하게 된 어린 시절의 입맛을 갖고 계신다. 그런데 바다도 좋아하실 것 같아 언젠가 강릉에 함께 갔는데 바닷가로 나가지 않으시고 차 안에서 바다구경을 하셨다. 바다가 무섭고 싫다고 하시는 것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무엇을 마음속에 갖고 계신 것 같다.
나는 입에선 그런대로 괜찮지만 아직도 비린내의 좋음을 못 느끼겠다. 비린내가 심해 절대 고등어는 절대 굽지 않는다. 가족들을 위해 삼치나 임연수어는 굽거나 코다리 조림을 하는 날이면 냄새가 빠질 때까지 향초를 켜고 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유난을 떤다. 하지만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신 날은 아침상에도 꼭 굴비를 구워 올리곤 했다.
두 엄마에게서 전수받은 각각 다른 입맛을 가진 남녀가 만났다.
우리는 정말 많이 달랐지만 결혼 전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창 좋을 때야 그깟 음식의 맛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얼마나 좋았게요.”
권태기.
권태기란 이별을 생각하게 되는 것.
중요한 것은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
연애 6년쯤에 첫 번째 권태기가 찾아왔다. 그런데 우리는 헤어지지 않고, 밀리듯 결혼으로 이어졌다.
뒤통수만 봐도 지겹고 미운데 참 이상하게도 결혼이란 결론이 났다.
결혼 후 6년째 두 번째 권태기가 왔을 때 타국살이란 환경에 놓이며 흐지부지 해결이 됐다.
세 번째 권태기는 12년 뒤쯤으로 생각된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심각했지만 애가 고3이라 고비를 넘겼다.
4년 전 네 번째 권태기가 갱년기와 함께 찾아왔고, 파탄을 가까스로 면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동갑내기 부부의 결혼 30주년이 되었다.
30주년을 기념한 여행은 신혼여행지였던 제주도였다. 여행을 마치며 장난 삼아 녹음기를 켜고 남편을 인터뷰했다.
“나랑 사는 30년이 어땠습니까? “
“좋았지. 뭐. 넌 참 좋은 사람이야. “
(뭉클) “앞으론 어떻게 계속 함께 살겠습니까? “
“네. “
“그거 알아. 다음 생에도 함께 살고 싶은데 청혼은 안 하려고. 니가 싫다고 할 것 같아. 난 그게 무서워.”
(뭐야. 그런 답을 할 줄 몰랐다.) “난 그럴 거라고 대답 못해. 생각해 볼게. 아! 우리 성별을 반대로 태어나자. 그럼 같이 살게. “
“아따! 결국 같이 살 구실을 찾다니 너랑 나랑 참 징하다.“ (출처를 모르는 사투리인지 뭔지.)
30주년 기념여행의 마지막날 아침 산책 중 벤치에 앉아 나눈 대화와 제주의 바람소리가 함께 녹음이 되어 있다.
권태기를 알아채게 되는 것은 언제나 밥상에서였다. 그깟 음식맛 때문에.
데이트 중의 라면에서도, 내가 만든 밥상에서도 음식은 맛이 없고, 음식 타박이 난무하고 기분이 상했다.
밥상에서 소소하고 유치한 싸움으로 시작되면 그렇게 서러웠다.
나는 밥을 하는 사람이었고, 권태기든 갱년기든 무엇의 시대가 오든 해물을 넣은 고추장찌개를 끓였다.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고기 넣은 고추장찌개를 끓인 적도 말을 한 적도 없었다.
다음 생에서도 끓이게 될 것 같은 영원불멸의 해물 넣은 고추장찌개.
나는 왜 그랬을까?
좋아하는 것을 왜 말하지 않고, 어째서 참고 맞추면 해결된다는 생각을 갖었을까?
하지만 단순히 맞춘다는 의미만 있었다면 계속되지 못했을 것이며 스스로 괴로웠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잊었을 만큼 그가 좋아하는 맛을 밥상에 올려주고 싶었던 마음.
그것이 나의 사랑법이었다고 생각된다.
남편의 입맛에 맞춘 고추장찌개를 계속 끓이다 보니 아이는 자연스레 고기 넣은 고추장찌개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게 된 것이다.
아이의 얘기를 들은 후 그날 저녁엔 국거리 양지 고기를 찾아내 통통 다지고, 보글보글 육향 가득한 고추장찌개를 끓였다.
오랫동안 만들지 않았어도 내 기억 속의 좋아하던 맛을 낼 수가 있었다.
“와! 엄마. 처음 먹어 봤는데 대박 맛있어!”
예전에 아침 방송에서 엄앵란 배우가 말했다.
“냄비뚜껑을 열어봐요. 그 속엔 다 펄펄 끓고 있지. 안 끓는 냄비는 없어. 다들 그러고 사는 거야.”
부부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 펄펄 끓고 있는 냄비 속에 있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겠다.
나만 펄펄 끓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냄비 속의 두부와 호박도 함께 끓고 있고, 옆집의 냄비 속 감자와 양파도 모두 펄펄 끓고 있다.
끓고 있음을 멈추지 못할 것이라면 재료를 바꿔가며 다양한 맛으로 끓이다 보면 덜 지루하지 않을까?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사실은 말이야. 나는 고기 넣은 고추장찌개를 좋아해!”
“한번 먹어봐. 괜찮다고.”
“이것도 맛있네. “
“내가 맛있게 끓여서 그래. 복 받은 줄 알아.”
“그건 맞아.”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고기 넣은 고추장찌개와 남편이 좋아하는 해물 넣은 고추장찌개를 번갈아 끓인다.
부부는 매일 밥상을 공유하는 사이다.
물론 처음부터 딱 맞는 찰떡궁합의 입맛을 가진 부부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았고, 속마음을 나누는 밥상을 차릴 줄도 몰랐다.
세상에 이상한 입맛은 없고, 조금 다를 뿐이다. 개취(개인적인 취향)다.
다른 것을 입에 조금도 넣지 않으려 할 것이 아니고, 상대가 좋아하는 개취의 맛을 함께 음미할 줄 아는 세월을 살아보려 한다.
어쩌면 좀 더 빨리 알아챘다면 권태기가 4차까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의 권태기 극복법이다.
이제 다양한 맛의 고추장찌개를 끓여 먹으며 살게 된 고집쟁이 동갑내기 부부생활의 후반전엔 권태기가 있을지 없을지 흥미진진하다.
사실 고추장찌개 글을 시작해 놓고 난항을 하던 중이었다. 처음부터 권태기로 이어지는 내용이 계획된 것은 아니었으나 뭔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됐다.
끝으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무쪼록 밥상에서 싸울 기운도 없으니 권태기의 총량이 다했기를 바란다.
“우리 오순도순 밥이나 맛있게 먹으며 살자고요. “
모두 사랑만 가득한 맛있는 가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