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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Oct 16. 2024

안갯속 같은 내 글의 정체성

브런치 10개월 차를 맞아 또 반성문.


매일 무엇을 쓴다.

똑같은 것은 재미없는 것 같아 이것도 저것도  찝쩍거린 후 꾸깃꾸깃 쑤셔 넣은 서랍 속이 터질 지경이다.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 건지, 무엇이 그나마 좀 나은지 아직도 모르겠다.

요즘은 내 글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에 빠져있다.


한 오백 년은 아니고 한 사십 년쯤. (50년인가?)

초등학교 작문반을 시작해서 쭈욱 뭔가를 쓰고 있는 나를 돌아보니 별반 발전도 없는 글을 참 계속 쓰고 앉았다.

신문물은 빠르게 발전해 이젠 누워서도 쓴다. “똑딱똑딱..”

신기한 건 쓰기가 지겹지는 않지만 길게 지나다 보니 글에도 트렌드가 있으며 어느 정도 따라가야 했다.

스필버그가 만드는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인줄로만 알았던 SF가 거대한 글의 장르가 될 줄이야..

<삼체>는 올해 읽은 좋은 책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아이의 곱상한 친구는 꽤 알려진 좀비물의 작가이기도 하다.

아이도 글도 정말 신기하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글 세상의 트렌드도 숨 쉴 사이도 없이 급변한다.

대단한 작가도 아니면서 나는 글의 정체성도 찾아야 하고, 트렌드에 맞출 수 있는가의 문제에도 직면했다.


모두 다 나만의 일기를 쓰는 독자이기만 하던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됐기 때문이다.

갓 알에서 나온 병아리인 내가 걷지도 못하면서 뛰려는 격이긴 하다.

가끔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작가님을 보면 무척 부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특활시간 작문반 선생님께서 검사로 읽으시는 것도 친구들 앞에서 내 글짓기를 낭독을 할 때도 부끄러웠다.

학교 백일장 가작이 최고의 수상 경력이다.

국민학교 작문반에 머물러있는 내 글을 누군가 읽는다고 가정해 보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다.


나는 소원하던 브런치에서 글을 쓰며 불리는 작가라는 말이 참  흡족하고, 충분하다.

구독자가 300을 넘었다.

브런치 안에서의 매우 사적인 구독자는 딱 세명인데 300이라니 나로선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영화 300을 보면 정말 엄청난 숫자임을 실감하게 된다.)

초반에 구독자를 늘리고 싶어 안달이 나서 여기저기 막 돌아다니며 노력했지만 그런다고 늘어나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고 글을 쓰다 보니 이 글 때문에 저 글 때문에 구독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마음으로 눌린 구독인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이어도 괜찮다.  내 글이 다시 읽고 싶어 누른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믿어버린다.

그렇다면 나는 300명이 읽을만한 글은 써야 하지 않을까?


지난여름 브런치 생활 6개월을 돌아보며 여러 고민이 됐다.

댓글이 달려서, 안 달려서 댓글을 의식하고 힘이 들어간 글을 쓰고 있었다. 댓글창을 완전히 닫았다.

그러나 댓글창을 닫아도 내 글쓰기는 마음에 안 들었다. 그것은 흔들리는 나 때문이었다.

오히려 소통 또한 글을 쓰기 위한 중요 요소가 됨을 느꼈고, 문제를 흔들림 없는 중심을 잡기로 해결해 보기로 결정했다.

요즘은 부분적으로 댓글을 열고, 코어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하나 둘, 하나 둘!”

연약한 햇병아리 같은 나는 조금씩 튼튼 근육이 생기고 있음이 느껴진다.


슬기로운 브런치 생활 10개월을 지나며 라이킷을 눌러주는 분들 중 처음에 누르던 분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한결같이 지켜보고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내겐 너무나 경이로운 분들이 있다.

내가 구독자가 되어 찾아가는 작가님들이 안타깝게도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도 한다. 탈퇴를 하고 흔적이 없어지기도 한다.

좋아하던 작가님인 뮌헨의 마리 작가님이 고인이 되셨다.

일면식이 없지만 마음이 너무 슬펐고, 나는 여전히 그분의 멋진 글을 읽으러 간다.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나고 또 쉽게 인연이 된다. 그런 곳이지만..

나는 우물쭈물하며 10개월째 계속 쓰고 있다. 곧 1년도 될 텐데 읽을만한 글을 쓰려면

“이젠 좀 방향을 잡아야 하지 않니?”

라고 내게 묻는다.


모두가 하는 고민일 수도 있고,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나만의 고민일 수도 있다.

과연 잘 쓸 수 있는 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고, 그러면 어떤 것을 제일 많이 썼을까?

가만가만 생각하니 주로 먹는 것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재밌게 느껴진다.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고 모두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내 글의 정체성은 먹는 이야기를 쓰는 것 인가보다.

가끔 지루해지면 조금 다른 것을 쓰기도 하겠지만 내 글의 정체성에 맞는 방향성 있는 글을 써보려 한다.

여전히 글쓰기 실험 중이다.

하나의 맛에 치중하기도 하고, 요즘 유행어인 이븐(even)하게 골고루 익혀보려고도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300명이 읽기에 So So.. 그런대로 맛있는 글이 탄생하지 않겠어?’


우르르르르 (구독자님들이 떠나는 소리다)

“먹는 이야기만 쓴다고? 난 관심 없는데! “

“꼭 먹는 얘기만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제발 가지 마세요~”

갑자기 구독자가 3으로 떨어지는 악몽을 꾼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재밌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브런치에서도 글짓기에서도 말이다.

물론
읽어주는 독자가 있어야
글짓기하는 나도 존재한다.

그러니까 잘 쓰자.
10개월 차 햇병아리 그사이!



글짓기를 위한 반성 일기인 이 <슬기로운 브런치 생활> 매거진을 만든 건 참 마음에 든다.

글쓰기에 대한 돌아보기와 부끄럽지만 공개적인 반성문을 쓰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도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탈퇴를 고민하던 것에 비하면 반성문 쓰는 기간이 길어진 것이 양반이 됐다.

오늘 새벽 앞산에 잔뜩 낀 안개로 뿌연 것이 내 마음 같지만

밥과 글을 계속 지을 수는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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