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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Feb 09. 2024

첫날, 그렇게 된 우리 사이

무지와 실수로 시작된 관계

비누와의 첫 만남


2010년 11월..

동물병원에서 세 마리의 아기강아지를 만났다.

10월에 태어났다는 강아지를 한 달 동안 엄마품에서 자라도록 기다리다가 만나게 된 날이었다.

세 마리의 아기 강아지는 모두 다른 집으로 가게 되어있었고, 나에게 제일 먼저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


강아지 두 마리가 아주 활발하게 돌아다니며 나에게 와서 배를 보이며 눕고 내 손을 핥고 꼬리를 흔들었다. 운명도 모른 채 귀엽고 발랄했다.

한 마리는 그저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엎드려 있었지만 아픈 강아지로 보이진 않았다. 세 마리 중 가장 크고 토실토실했다.

엎드린 아기 강아지는 마치 그날에 대해 아는 것 같았다. 엄마와 헤어지는 날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 엎드린 강아지에게 눈이 가고 마음이 쓰였다.

많은 생각이 스쳤으나 결국 나는 활발하고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가 아닌 가만히 엎드려있는 강아지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다들 의외라는 얼굴 표정이 보였다.

모견의 주인은 아기강아지가 닭고기를 아주 잘 먹는다며 아기강아지를 잘 보살필 사람인지 나를 걱정스럽게 살펴보는 것이 느껴졌다.

전주인과 형제들과 작별 인사를 마치고, 가져간 귀여운 담요로 포근히 감싸 안고 집으로 데려왔다.

마치 신생아를 안고 병원에서 퇴원할 때처럼 조심스럽고 기대와 두렵기도 한 기분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좋았을까?

비누는 부드러운 이불, 방석, 인형을 좋아한다. 지금도 부드러운 무언가를 보면 눈이 반짝이며 탐을 낸다.

수면바지를 입는 사람은 비누의 방석이 되고 애착인형이 되어야 했다.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아직도 새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했고, 발바닥은 여전히 핑크색의 복숭아 젤리처럼 말랑말랑했다.

엎드려있던  아기강아지는 집으로 오니 걱정과 달리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거실에서 아장아장 걷더니 마련된 배변패드를 찾아가 쉬를 했다. “똑똑이 엄마가 잘 가르쳤구나”

“이 거실은 내가 접수하겠어! “

거실에 영역표시를 하더니 또 아장아장 걸어 안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가족은 작은 강아지가 피리 부는 사나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석에 붙듯 졸졸졸 따라갔다.

길이가 한 뼘밖에 안 되는 아기 강아지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밥을 줄까? 장난감을 줄까?

그런데 안방 한가운데에 위풍당당 씩씩한 강아지가 멈춰 섰다.

우리는 작은 강아지를 빙 둘러앉았다.

체구가 큰 가족들이 행여 무서울까 싶어서 목소리도 조용히, 움직임도 살살하며 눈높이를 맞춰 거의 엎드렸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날에 우린 모두 비누의 서열 아래로 정해졌다.


‘쉬 할 건가?’.. 배변패드가 없는 곳인데 긴장되었다.

그 순간! 손가락 만한 꼬리를 샥 동그랗게 위로 말아 올리더니..

“뽕! “

살며시 나온 소리를 잘못 들었다고 하기엔 네 명이 모두 들어버렸다.

세상에나 이렇게 황당하게 귀여움을 발사했다. 그리고 다시..

“뽕~~~! “

자신감 있는 소리였다.

“뭐야! 너무 귀여워! 미치겠다!”


작은 강아지와 우리는 첫날에 시원하게 방귀를 트며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오래된 흐릿한 사진..비누는 한살~


비누와의 첫 만남, 이전 세상과 이후 세상


나는 무지했고,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내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귀국 후 한국말을 거의 못한 채 일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보내졌고, 왕따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높은 아파트 집에 아이들이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서 애들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운적이 없었다.

강아지를 키우려는 생각은 한국생활의 적응이 아주 힘들었던 내 아이들을 걱정하던 마음에서 시작이 되었다.

귀여운 강아지가 내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을 줄 거라고만 생각을 했다.

10년을 넘게 함께 살며 강아지가 자식이 되고, 가족이 될 거란 생각은 못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아이를 위해서 강아지를 데려온다.

반려생활에 대한 아무 준비도 없이 그 이기적이고 치명적인 잘못된 선택과 결정을  내가 했다.

강아지는 절대 자라지 않는 자기주장이 막 생기려 하는 기저귀를 떼지 못한 세 살짜리 아가다.

나도 남편도 어린 시절에 강아지를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귀여워만 했을 뿐 주택에서 부모님이 책임지고 키우신 거였다.

우린 동물과의 반려생활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무식했다.

아파트에서 작은 강아지와 함께 사는 일이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는 힘든 일인지 상상도 못 했었다.


강아지를 데려오기로 호기롭게 결정을 한 후 주변에 강아지를 키우는 집에서 새끼를 낳은 집이 있는지 수소문을 시작했다.

개공장에서 모견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무자비하게  새끼를 계속 낳게 하여 상품으로 건강치 못한 강아지가 나오는 비인간적이 시장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나는 그 인면수심 파렴치한들의 돈벌이에 일조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엔 집에서 낳은 강아지를 데려오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강아지를 키우는 환경이 바뀐 만큼 가정견이 새끼를 낳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데려올 아기 강아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무렵엔 유기견을 데려올 수 있다는 것도 방법도 몰랐다.


몇 달이 지나고, 동네의 동물병원 앞을 지나가다가 무조건 들어갔다.

인상 좋은 젊은 의사 선생님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혹시 이 병원 다니는 강아지 중에 새끼를 낳은 강아지를 살 수 있을까요? “

“저희 병원에선 강아지를 팔지 않아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네요. “

개공장에서 태어나고 판매하는 강아지는 사고 싶지 않아서 몇 달째 알아보는데 데려 올곳이 없어서 그랬다는 말을 구구절절하며 내가 말 끝을 흐리니 내 마음을 이해하셨는지 인상 좋은 선생님이 말씀을 하신다.

“일주일 전에 흔치 않게 몰티즈가 네 마리의 새끼를 제왕절개로 낳은 댁이 있는데 다 키우시진 못할 것 같으니 한번 여쭤볼까요? “

나는 병원에 오래 다니신 분이냐고 전주인에 대해 물었다. 부모 강아지를 다 키우시며 새끼를 딱 한 번만 낳게 하려고 했는데 보통 작은 강아지들은 한두 마리를 낳는데 네 마리를 낳게 되었다고 했다.

전주인에 대한 안심을 하고, 번호를 남기고 오니 다음 날에 연락이 왔다.

한 마리만 엄마견과 키우고, 두 마리를 아는 댁에 보내기로 했다며 엄마와 한 달 동안 지내게 한 후 한 마리를 내게 보내시겠다고 했다.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사는 강아지들의 아기 강아지가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내 아이를 위하는 마음만으로 필요용품처럼 강아지를 데려오려 했던 것 같아 엎드려있던 강아지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측은지심과 두려움으로 선택한 엎드려있던 아기 강아지는 우리의 비누가 되었다.

어쩌면 비누는 가만히 나를 살펴보고, 나를 간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개엄마가 되고, 자식 셋이 되었다.

두 아이들과 눈물의 밤을 지새우던 준비 안된 귀국 적응기에 똥싸개 강아지와의 준비 안된 적응기를 보탰다.

자식 셋은 내 밥을 먹으며 함께 자랐다.

사람 아이 둘은 어른이 되었고, 막내딸인 비누는 아직도 세 살짜리 아가인 채 14년이 흐르고 있다.



무지와 실수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치유와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맹목적인 애정관계가 되었다.




막내딸인 비누에게 바라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비누가 딱 한마디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 나 아파요”




* 반려생활의 에티켓을 지킵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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