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의 계절이 왔다.
새벽 출근을 지켜보려고 일어나니 한기가 훅하고 느껴졌다.
주섬주섬 얇은 가디건을 찾아 걸쳐 입으니 이번엔 무릎이 시린 기분이 든다.
“블랭킷을 떠야겠다“
너무 덥기도 했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뜨개질 가방을 저만치 밀어두었다.
처음 코바늘 뜨기를 시작했던 것은 괴로움에 허덕일 때였다.
베카는 나에게 실뭉치를 건네주며 뜨개질법을 알려줬다.
반짝거리는 예쁜 날개실로 동그란 수세미를 뜨니 모난 마음이 점점 동그래졌다.
수북이 수세미가 쌓이고서야 괴로움은 어디로 갔는지, 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컵 받침을 뜨고, 가방을 뜨고, 목도리를 뜨고, 조끼를 뜨더니 커다란 블랭킷이 뜨고 싶었다.
예쁜 도안을 찾고, 알맞은 실을 구입했다.
실은 생각보다 많이 비싸서 실이 배송올때마다 눈치가 보였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값을 조금 더준 자연스럽게 색이 변하는 실로 뜨니 이어붙이지 않아 편하고, 한참 해야 하는 단순한 작업이 지루하지 않았다.
블랭킷을 뜨는 일은 한코 한코 떠서 점점 단이 늘어날 때마다 무릎이 따뜻해지며 마음을 데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어지는 일이다.
뜨개질은
공기도 함께 뜨는 거라면서요..
영화 <안경>
베카가 실을 주며 “코바늘은 6호로 하나 사 “
“어! 나 코바늘이 있어. “
나에겐 구식 코바늘 세트가 있었다. 엄마의 유품이다.
가느다란 코바늘에 정을 들이고, 한참 동안 이것저것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걱정거리가 희미해지니 뜨개질 하는 손이 아파왔다.
결국 그립감이 아주 좋고 편한 코바늘을 수세미를 뜰 때 잘 쓰는 6호, 겨울용 목도리나 블랭킷을 뜰 때 쓰는 7호와 8호를 구입했다.
손이 아주 편하다. 너무 편한 나머지 엄마의 코바늘엔 손이 가질 않는다. 엄마는 이 불편한 코바늘로 일본 도안집을 구해 기호를 분석하며 작은 도일리부터 큰 소파 등받이며 피아노 커버를 뜨고, 나의 여름용 가디건, 원피스 등등의 작품들을 떴다. 그리고 연하게 쑨 풀을 먹여 빳빳하고 까슬하게 다림질하는 고된 작품활동을 했던 것이다.
요즘은 엄마의 코바늘을 사용하지 않지만 항상 뜨개 가방 안에 들어있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직도 엄마가 꿰어둔 빨간 면실이 그대로 돗바늘 귀에 매달려 있다.
왠지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 돗바늘은 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바늘귀엔 항상 눈에 띄는 실을 꿰어두어야 혹시 어디 떨어지거나 잃어버려도 찾기 쉽고 안전한 거야 “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돗바늘에도 가끔 뜯어진 곳을 꿰매는 뾰족한 바늘에도 모든 바늘에 실을 꿰어둔다.
‘맞아. 엄마가 가르쳐준 거였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아직도 엄마의 흔적은 나의 여기저기에서 찾을 수 있다.
엄마를 찾으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뜨끈뜨끈해지는 뜨개질의 계절이 왔다.
밀어두었던 뜨개 가방을 끌어당겨 실을 고르고, 코바늘을 찾는다.
올해는 어떤 뜨개질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