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속에 있던 보물
어떤 연유로 이 책을 선택했을까 생각나지 않는 오래전 사둔 책꽂이 속의 책이다.
책의 노란색 마지막 장이 마치 보석 호박의 색으로 느껴졌다.
답답하고 미련해 보였던 우리 할머니들의 삶이 녹아있었다. 그녀들의 삶이 이해되고 뭉클하다.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수동적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할머니들은 대단히 능동적이며 자기 주도적이고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성의 바람, 여성의 재가, 첩과 어울려 사는 삶의 모습 등의 시대적인 불편한 이야기들이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또한 흙과 바다와 동물에 대해 답답함 없이 정확한 묘사를 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되어 어우러져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화하였으나 불편한 이야기들을 편향적이지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탄탄하여 읽는 이의 마음 깊은 곳에 가닿을 수 있도록 쓴 멋진 글이다.
세 개로 나뉜 길지 않은 글을 읽으며 여러 번 내 안에서 깊은 탄성이 나왔다. 오래 여운이 남을 글과 작가의 발견이었다.
나는 이 보석 같은 책을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또 부럽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만났다
특별히 하는 일 없는 내게도 공휴일은 여유가 찾아지는 날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임시 공휴일인가?
며칠 동안 이어지던 자극적인 요란한 비행기 소리처럼 마음이 불편해지는 임시 공휴일이다.
순하게 와서 닿으며 마음이 가득 찬 가을의 독서가 소중하고, 참 다행이다.
다음은 마음에 남는 구절을 필사해 본다.
<잔치국수 분천 어린 농부>
강명희 중편소설
화도댁은 씨감자 심을 때 생각이 났다. 움에서 싹을 틔운 감자의 씨눈을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그러나 무턱대고 씨눈 숫자만큼 자르는 것은 아니었다. 감자가 싹이 나서 자랄 만큼의 양분을 남겨 두어야 한다. 감자는 씨감자에서 양분을 취하며 자란다. 그러다가 뿌리가 내려 스스로 양분을 흡수할 때서야 비로소 어미에게서 독립하는 것이다.
-중략-
”........ 여자는 말이여. 이 씨감자 같은 거여. 자식이 제 역할을 할 때까지 제 살을 베어 먹여 살리는 씨감자 같은거여.“
어린 농부 중.. p.216-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