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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Feb 22. 2024

키워드 선택 완료

맛있는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다.

나름의 규칙을 세워두었다.

목요일엔 글을 발행하지 않고 글을 읽는 날로 비워두기로 했다.

할 일 없는 사람으로 보여도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글을 읽을 시간은 안 생기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숙제를 주었다.

쌓여있는 책을 읽고, 브런치 다른 작가님들의 좋은 글을 읽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 발행 단추를 누른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구독과 라이킷을 누르다가 궁금해졌다.

어! 필명 아래에 직업이 기재되어 있네.

‘나는 없네’

전문적인 직업을 갖은 분은 물론이고, 글이 많지 않은 분도 나와 비슷해 보이는 분들도 직업란에 적혀 있었다.

이건 누가 부여하는 걸까?

나는 직업이 없어서 부여받지 못하는 건가?

직업 증명서가 있는 걸까?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다가 프로필 편집에서 직업 키워드를 고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하!

주르륵 나와있는 키워드를 고르다가 나의 직업이 무엇인가 생각에 잠겼다.


원래의 나는 음악을 하는 예술인이었다. 

의학을 공부하면 의료인이 되고, 법학을 공부하면 법조인이 되듯이 음악을 특히 기악을 전공하면 다른 직업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

대학 3학년 시절 과도한 연습으로 인한 손가락에 문제가 생겨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엔 휴학을 하게 되었다.

‘음악가로서 살게 될 미래만을 꿈꾸던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괴로운 날을 보내던 중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아이러니하게도 미술학원의 유아반 보조선생님이었다.

유아반 보조 선생님이어서 미술을 가르치진 않았고, 메인 선생님을 위한 준비를 돕고 우는 애기들을 달래주고, 학원버스 안내지도를 했다.

애기들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말주변 없는 나는 애기들과 조근조근  말하는 것이 재밌었다.

휴학했던 기간부터 복학까지 꽤 오랜 시간을 했다.

보조인 나의 능력이 원장님 마음에 흡족했는지 나중엔 나에게 유아반의 담임이 맡겨지기도 했다. 어딘가에 소풍 갔던 단체 사진도 있다.

어느 정도의 회복이 된 손가락으로 겨우 졸업연주를 마쳐 졸업장을 갖게 되었으나 미래가 없는 연주가는 다시 미술학원에 선생님이 되었다.

졸업 2년 후 6년을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여 직업 없는 아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인 주부가 되었다.

결혼 후 6년이 지나고, 미국에 사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이방인이 되었고, 통장잔고가 20달러이던 날에 나는 베이비 시터가 되었다.

한 달에 800달러가량을 벌던 베이비시터 일은 귀국이 결정되기까지 계속했다.

귀국 후엔 아이들의 엄마로만 지냈다.

조금의 여유가 생기자 미국에서 배우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못 배웠던 케익데코레이터가 되고 싶었다.

Wilton method instructor (WMI)가 되었고, 이후 1인 케익집 사장님이자 선생님이 되었다.

그러나 너무나 좋아했던 일이 1년 정도 후 무서운 월세에 허덕이며 지옥이 되었고, 다시 좌절하고 폐업..

돌아 돌아 다시 주부생활 중이며 나의 인생에서 멋진 직업이 생길 일은 없겠다고 무거운 마음이 바닥으로 가라앉던 중이었다.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랜 염원 같은 일이었다.

글쓰기가 직업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무언가를 끊임없이 쓰고 거의 매일 썼다. 그냥 사는 동안 내내..

3년간 버릇처럼 새해가 되면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모르게 생일 근방에 작가신청을 했다.  

드디어 갈망하던 브런치의 작가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맛있는 글을 쓰고 싶다. 반드시 음식 이야기라는 것은 아니다.

글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나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드는 기분과 같다.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요즘의 나는 글쓰기를 하는 이 시간이 행복하고, 딱딱한 바닥을 뚫기 직전이었던 마음이 서서히 위로 떠오름을 느낀다.


나는 그냥 살았고, 그럼에도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는 이였다.

직업으로만 쓰고 보니 내 인생이 별거 없어 보인다. 별거 없지만 차차 얘깃거리로 풀어야겠다.

그럼에도 남기고 싶은 나의 일을 생각해 보자.


과거엔 한 가지 길밖에 모르는 연주가가 되고 싶던 예술가였다.

현재는 아내이고, 엄마인 주부이다.

미래엔 맛있는 에세이를 쓰고 싶다. 꼭!


에세이스트 - 주부 - 예술가


이루고 싶은 미래의 직업을 앞장 세우고,  남기고 싶은 나의 직업을 선택하여 세개의 키워드 선택을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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