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엄마는 점점점 귀여워지셨다
나무의 나이테 안쪽부터 점점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무서운 병이 엄마에게 찾아왔다.
늘 똑똑했던 엄마..
늘 경우가 바른 엄마..
모든 일에 부지런하고 계획이 투철했던 엄마..
언제나 강했던 엄마..
왜 그렇게 됐을까?
아무리 원인을 찾아봐도 알 수가 없고, 어떻게 하면 회복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서 괴로워하길 벌써 몇 달이 지나갔다..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이 되어왔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기도 했고..
집 앞에서 집을 못 찾는 엄마의 전화를 받을 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무섭기도 했고..
다행히 오랫동안 사셨던 동네였으므로 길에서 멍하고 서계시면 화원 아주머니가 집으로 모셔다 주시기도 했고, 때론 은행 대리님이 따뜻한 차 한잔 드시게 하면서 저에게 전화도 주시기도 했다.
연로하신 엄마를 홀로 계시게 할 수밖에 없던 현실에 대하여 왜 소홀했을까 자책과 자학의 시간도 또 지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혹시나 우리 엄마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마음 저 깊은 곳에 꺼질듯한 작은 크기의 미련한 희망도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강한 엄마는 아이처럼 점점 눈매가 순해지셨고, 내겐 그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이제는 하루하루 지금 이 정도의 상태로 엄마가 곁에 있음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내일도 제발 오늘만 같기를 기도합니다.
아직도 내가 딸임을 알고, 내 이름을 잊지 않는 엄마에게 감사합니다..‘
이 글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썼던 글입니다.
힘들었지만 곁에 함께 계심이 감사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립군요..
엄마의 49제까지 매주 수요일 제사마다 제가 올렸던 꽃 사진입니다.
글이 미숙하고 어색하지만 제목도 그대로 글도 그대로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저의 사모곡을 그대로 발행을 누르려 합니다. 이 글의 초반부는 무려 10년도 더 이전에 썼던 글이었고, 2020년에 브런치 서랍 속으로 들어왔으며 2024년이 되어 바깥세상으로 내놓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을 마치 발이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공허하게 의미 없는 눈빛을 하며 살고 있을 때 더 일찍 엄마를 보낸 친구가 말을 합니다.
“나는 30대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3년을 울었는데 너는 50대에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5년을 울 거야”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었고, 그때부터는 남이 볼까 마음속에 삭히던 울음을 밖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었죠.
정말 5년이 넘으니 눈물은 그쳤고, 추억과 기억, 그리움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드러날 때 놀라기도 합니다.
50년을 살며 별의별 일이 많은 관계였던 엄마였고, 이젠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자연스러워졌지만 참 많이 생각이 납니다.
그립군요.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