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
나와 형은
느지막한 오후 당구장에서
스리쿠션을 연습하고 있었다
굴러가는 공들
충돌하는 소리 외에 적막
“이제는 물을 보고
가장 먼저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흰 천을 보면 깨지기 직전의 유리가 연상돼”
어떤 것을 견뎌 내는 사람의 얼굴로
형이 읊조렸고
우리의 머리 위로
빛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모조된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없거나 없어진 무엇으로써 염원 된다는데
또 누군가는 이것으로
가해하고
가해받고
이것을 쥐고 있을 때 나는 더없이 간지러워
소양감이 든다”
중얼거리며
나는 창가에 기대어 서 있었고
형은 쪼그려 앉아 당구대 구르는 공의 궤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우리를 종이에 옮겨 그리면 그 구도 뒤틀려 있을 것이다 인간의 솜씨일 것이다
우리의 전방에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의 의미를 부정하기 위해 온 세계가 동원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