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축하합니다

초등학교 6년, 인생의 한 챕터를 끝낸 너에게

by 가온결

언제 다가오나 싶었던 큰 아들의 초등학교 6년 생활이 끝나고, 드디어 졸업을 맞이했다.

엄마는 처음이라서 어설프고 어색했던 나는 첫째에게 신경이 곤두서 있던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3년여의 소중한 초등생활이 절반이상 날아가버린 아이의 일상이 참 소중했음을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학교 다닐 때 타고난 FM으로 나름 모범생처럼 지냈던 나는 엄마를 참 무던히도 들들 볶았던 것 같다.

내가 자랄 때는 전혀 인지 못했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보니 그 시절 엄마의 인내심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때때로 내가 아이 때문에 겪은 일에 속상함을 토로하며 엄마께 진심으로 사과하는 일도 생겨났다. 그때마다

웃음으로 가볍게 넘기는 엄마의 넓은 마음과 이해심을 나도 아이에게 온전히 전해야겠다고 느껴졌다.


전교 1등처럼 빼어난 우등생은 아니었으나, 공부만 하고 지냈던 학창 시절이 조금은 따분했다고 여기는 나는 학군지의 메리트를 공감하지 못하는 엄마였다. 반면에 남편은 학창 시절을 등한시한 후회 때문인지 아들들은 학군지에서 꼭 학교를 보내고 싶어 했다. 결국 동네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고학년 전학을 생각하고 있던 찰나 남편이 덜컥 계획을 앞당겨버렸다. 어차피 학군지에서 학교를 보낼 거면 조금이라도 일찍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길 하나만 건너면 구가 달라지는 곳으로 갈 거라 예상했지만, 소위 네임밸류가 높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의 이사라니 오기 전부터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워낙 엄마들의 카더라

소문이 높았던 동네라 아이가 혹시나 비교당하거나, 상처받지 않을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절반이상이 영유를 보내는 지역적 특성이 있지만, 나는 가까운 게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에 5분 거리 어린이집을 보내고 졸업시켰다. 아이의 첫 사회생활, 슬기로운 1학년 생활은 적응의 연속이었다. 엄마의 걱정을 뒤로하고 씩씩하게 등교하는 아이의 모습에 '언제 저렇게 컸을까' 대견함이 묻어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 무렵 똥손인 엄마와 달리 손재주가 좋은 첫째의 취미는 책이나 유튜브를 보며 몇 시간이고 앉아서 종이접기를 하는 것이었다. 반친구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형형색색의 미니카를 선심 쓰듯 접어주는 게 일상다반사였던 시절이다.

1736650711381.jpg
1736650707157.jpg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심취하던 종이접기는 아들이 신문물에 접어들면서 전혀 감을 잃어버렸다. 연륜 있고 경험 많은 인자한 담임 선생님의 지도하에 안정적인 학교 생활을 이어나갔다. 유독 단합이 잘 되는 같은 반 엄마들을 만나 남자친구들끼리 반축구도 재미나게 즐기고, 기억에 남는 생일파티도 경험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어려웠지만, 1학년 시절 엄마들과의 인연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행복한 1학년을 마치고, 아들에게는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등교하는 날은 줄어들었고 만족스럽지 못한 줌수업은 최소한의 임시방편이었다.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생활습관을 익히고, 친구들과의 생활 속에서 사회성을 터득할 시기에 집콕이라는 현실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어디 나와 내 아이뿐만 그랬을까, 그 시기 전국의 엄마와 아이들은 모두 대혼란시기였을 것이다. 불안감은 나날이 커져갔고 마음대로 외출도 쉽지 않았기에 아이의 무기력함은 커져갔다. 핸드폰도 없었는데 친구들이 많이 하는 게임을 하고 싶어 해서 처음 접하게 해 준 게 잘못이었다면 잘못이었을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는 말처럼 동생보다 더 쉽게 게임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눈만 뜨면 학습탭으로 스스로 학습을 하고, 문제집을 풀고 등교하던 착실하던 내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스멀스멀 내면에서 자아가 꿈틀거리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면서 첫째와의 갈등도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사춘기의 전초전이랄까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아이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최대한 핸드폰을 늦게 사주려 했던 부부의 욕심이 오히려 아이를 소외감에 빠져들게 했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작년 2월 6학년 무렵이 되어서야 큰 아들에게 첫 핸드폰이 생겼다. 사주는 아빠도 어깨 뿜뿜, 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번졌다.

아이의 반항심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듯해서 모두를 위해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고,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던 아이도 검사에 응하게 되었다. 불교를 믿으시는 시부모님께서는 장손이 삐뚤어질까 내심 염려하시며 개명의 해프닝도 겪었다. 5학년 때부터 한 번씩 감기로 결석하게 되면 며칠은 학교를 가기 힘들어해서 엄마의 속은 타들어갔던 순간도 있었다.


검사 결과, 아이에게는 특별한 분노장애나 문제행동은 없었지만 타고나길 예민한 성향에 소극적인 성격이 더해진 게 문제의 발단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부터 쓰기 시작하던 마스크를 아직도 학교 갈 때나 외출할 때 쓰고 있는 아이는 타인과의 교류가 즉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다수의 방과 후 수업을 듣길 좋아하며 여러 가지 경험을 추구했던 아이의 꿈이 꺾이면서 점점 더 무기력해진 건 아닐까. 주양육자인 나에게도 변화가 필요하기에 처음 부모 상담을 시작했던 날 양육환경을 얘기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아냈었다.

어릴 때 마냥 순하다고 예쁨 받았던 아이의 성향이 사실은 표현을 안 했기에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는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연년생 동생에게도 심한 질투 없이 지나갔는데 그 모든 것이 내면에 스트레스로 자리 잡은 건 아닐까. 다른 엄마들에 비해 많은 것을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상담선생님께서는 그 보다 더 많이 내려놓고 아이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 스스로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이의 행동이 못 마땅하고 눈에 거슬리는 부정적인 행동을 해도 나는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그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가빠지던 심장도 지끈거리던 두통도 어느덧 사라지고 있었다.


상담선생님과의 놀이치료로 보드게임을 즐기던 아이는 게임자체에 흥미는 높았지만 선생님의 사소한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요즘은 예전보다 편하게 눈 맞춤도 하고, 간단한 질문들에 불안해하지 않고 대답을 하고 있어서 조금씩 기대감을 키워나가고 있다. 며칠 전 모범생 아들에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해 학교 등교에도 어려움을 겪는 금쪽이 사연을 시청하게 되었다. 내 아이처럼 소극적인 성향의 아이에게 타인의 시선이 때론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마음으로 이해가 되는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내가 키우는 내 아이는 엄마가 가장 잘 안다고 하듯이 온전히 그 마음이 전해지니 아이도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부분들이 생겨났다. 나는 요즘 학교든 학원이든 어딜 가든 큰 아이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하지 않는다. 먼저 시간을 체크하고 몇 시에 나갈 거라고 일러주면 아이 스스로 늦지 않게 준비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좀 더 믿고 기다려주는 것뿐인데 그때는 왜 서로의 감정만 앞세우고 상처만 줬을까 뼈저리게 후회하는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12월 마지막 날 졸업식을 앞둔 일주일 전부터 순간순간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6개월 전만 해도 등교가 힘들어 초등학교 졸업도 못하는 건 아닌 지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집에서와는 많이 다르지만, 착하고 순한 성정에 친구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가 훌륭하다니. 생활통지표 속 아들의 행동발달 내용의 일부분이다.

새로운 학년으로의 진급, 중학교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칠 때도 있고 또래들의 스타일도 눈여겨보는 것 같다.

꼬물거리던 아기에서 조금씩 성장하며 내 품을 떠나게 될 첫 아이가 6년의 길고 긴 초등학교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초중고 학창 시절의 첫 챕터를 무사하게 끝낼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든다. '인성이 곧 인생이다.' 내가 공감하는 말 중에 하나인데, 아이도 엄마의 뜻대로 바르게 자라나길 간절히 염원한다.


6년보다 짧은 3년은 더 빠른 속도로 아이의 성장과 함께 지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누리지 못했던 또래와의 사회성에 조금 더 적극적이기를, 좋은 친구들과의 교류가 새롭게 이어지기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엄마와의 내적소통이 이루어지기를.

'힘들어도 잘 버텨낸 네가 자랑스럽다고, 아들아 나는 언제나 네 편이라고'

수줍은 엄마의 고백을 짧은 글로나마 이렇게 전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겨울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