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추억

겨울이 주는 따뜻함

by 가온결

매서운 강추위가 코끝을 시리게 하는 요즘

문득 '예전의 겨울은 어땠었지?' 지나간 과거의

겨울추억이 떠올랐다.


올해 뉴스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될 거라는 소식에

기대하는 이들도 많았을 텐데.......

모두가 꿈꾸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올해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내가 생각하는 겨울은 지금보다 더 혹독하고 추웠던

기억이 아련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자주 보았던 기억은 생생하다.

국민학교 시대를 보낸 80년대생은 기억할 수도 있겠다. 바로 높은 언덕에서 씽씽 타고

내려오던 비료포대 썰매 말이다. 사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다시 타라고 하면

손을 내저을게 분명하지만, 그 시절엔 분명히 스릴 있고 재밌는 추억의 단편이었다.

올 겨울 내리는 첫눈에 설레던 둘째는 특유의 호기심으로 눈을 먹어도 되냐고 질문을 던졌다.

환경오염에 질색팔색 아이에게 '안 돼'라고 외치고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기억 속에 어린 시절 남동생과 눈사람을 만들며 눈을 맛보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것들이 많아지는 요즘. 아이의 순수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맘때 겨울이면 떠오르는 것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릿국'이다. 아마 한겨울은 아니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어귀였던 것 같다. 무덤덤했지만 속정이 깊었던 할머니는 서울에 오실 때마다 나를 종종

데리고 해남으로 향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라 낯선 환경에 할머니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생활했던

기억의 흔적이다. 시골이라 깜깜해서 저녁 8시면 잠에 들고,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나날들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소일거리 삼아 읍내오일장에 고구마나 야채를 팔러 가곤 하셨다. 새벽녘 첫차를 타기 위해 손녀딸까지 데리고 길을 나선 여정이 고단하시진 않았을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시골에서 보기 힘든 여섯 살 꼬마는 버스에서도 할머니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인정 많은 할머니들은 호주머니 여기저기서 유가사탕, 고구마, 약과 등 달달구리 간식을 건네주셨고, 나는 맛있게 먹으며 한 시간 거리를 얌전히 가곤 했었다.


짧게 열리는 장이라 할머니가 칭칭 감아준 목도리를 두른 체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시선집중이었다. 그래서

고구마나 야채를 사가는 손님들이 착하다고 돈을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때 당시 돈의 개념도 몰랐던 나였지만 냉큼 받아서 할머니 손에 그대로 올려놓았다. 파장 분위기가 되자, 할머니께서는 나를 끌고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하셨다. 그곳은 큰 가마솥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시골장터 식당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 유난히 '밥'을 사랑하던 나는 나름 편식쟁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그런 것들이 통할 리가 만무했기에 주는 대로 잘 먹었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의 메뉴는 막 지어낸 밥과 가마솥에서 한솥 끓이고 있던 보릿국이 전부였다. 그냥 보기엔 풀만 가득해서 풀 맛이 나겠거니 첫 술을 뜨는데 그때의 생생한 맛은 지금도

내 미각의 기억을 되살리곤 한다.


추위에 떨었던 온몸이 밥 한입, 국 한술에 사르르 녹는 신기한 경험이 할머니 살아생전 추억의 한 페이지기도 하다. 야무지게 밥을 말아먹으며 국물 한 방울 남기치 않은 체 보릿국을 진미에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날 이후 할머니께서 언제 장에 또 가시려나 내심 기대하며 장날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절대미각의 소유자도 아니고, 음식에 대한 애정도 평범하지만 그때 먹은 보릿국의 감동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의 추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겨울의 추억은 과거와 소통하고 현재와 공존한다. 순수한 어린아이 일 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마냥 행복했다면 지금은 질퍽한 도로상황에 얼굴을 찌푸리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드는 요즘이지만 저마다의 따뜻함은 누구에게나 있다.

'붕세권'이라는 말이 유행일 정도로 갓 나온 붕어빵과 뜨끈한 호두과자는 남녀노소 불문 겨울철 최애간식이다. 음식에서 오는 따뜻함이 마음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로 이어지기를...... 어려운 이웃에게 손 내미는 작은 불씨가 사랑의 온정으로 거듭나기를....... 뜨거운 감성으로 겨울의 낭만을 만끽하기를.......


한 해의 끝처럼 어느덧 겨울의 절반도 지나가고 있다. 다가올 겨울은 모두에게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눈부신 감동으로 전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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