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저마다의 꿈을 지니며 어른으로 성장했다. 서툰 말문이 트이고, 대화가 가능해진 순간부터 '꿈'은 피할 수 없는 질문 중 하나였다. 나는 막연하게 '선생님이 될 거예요.'라며 자랑스럽게 대답을 했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천사 같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나도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훌륭한 스승이 되고 싶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머리가 커지면서 그 생각은 점차 줄어들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양한 부류의 선생님들을 만났고, 교권이 떨어지는 순간들도 목격하면서 쉬운 길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다. 돌이켜보니 의미 없지만, 강남 8 학군에서 5학년까지 다니다가 2학기 때 분당신도시로 전학 온 내게 모든 것이 낯설던 때가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선생님들 발령이 늦어져 온종일 체육으로 시간을 보내는 날도 많았었다. 여자아이들은 피구에 온 힘을 다하고, 남자아이들은 축구로 모든 에너지를 분출했었던 것 같다. 1분 단위로 전학생이 쏟아졌으며, 심지어 책상과 의자도 부족했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옆반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 반 아이들이 72명 남짓이었다는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특히 11명이 한 팀으로 뛰는 축구를 30여 명이 넘는 개구쟁이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누비던 축구경기는 내 생애 잊지 못할 진풍경 중 하나이다.
집도 동네도 학교도 모든 것에 적응하기 힘들던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대상이 바로 두 살 터울 남동생이었다. 할 일 없는 두 어린이는 그렇게 붙어 다니며 아웅다웅거리고 먹을 걸로 수도 없이 싸웠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이 친구를 따라 학교 근처에 있는 도서대여점에서 난생처음 보는 만화책을 잔뜩 빌려왔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닥터슬럼프', '슬램덩크' 류의 일본 만화였다. 동생과 함께 만화책을 보면서 도서대여점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날로 커져갔다. 드디어 동생을 따라 입구에 들어선 내 눈엔 '이렇게 많은 책을 다 빌려서 볼 수 있다고?'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사오기 전까지 위인전만 집에서 수십 번 돌려보던 나에게 각양각색의 책들이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도서대여점이라는 말보다 '책방'이라는 말이 편해질 무렵 나는 동생보다 더 많이 책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나의 첫 시작은 90년대 대표 순정만화 이미라의 '인어공주를 위하여'였다. 친구들은 주인공의 외모를 칭찬했지만 나는 그 스토리에 몇 날 며칠을 울면서 슬퍼했다. 그때부터 타고난 감수성이 예민한 탓도 있었다. 이은혜의 블루, 원수연의 풀하우스까지 섭렵하고 나니 더 이상 만화책의 흥미가 사라질 때쯤 나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소설책이었다. 장르는 하이틴 로맨스 소설로 두께가 얇아 막힘없이 빠르게 읽어나갔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오는 족족 신간들을 무섭게 돌파해 나갔다. 대학 졸업 전에 속독학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지만, 지금도 남보다 빨리 책을 읽는 속도는 이 시절에 습득된 거라 여겨진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한국소설에 눈을 돌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애늙은이 습성이 있었나, 아이들이 잘 읽지 않는 장르로 독서를 시작했던 것 같다. 바로 공지영 작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같은 여성작가들의 소설류였다. 이제 14살 중학생이 인생을 얼마나 살았다고 극 중에 등장하는 세 친구의 삶을 동경하며
멋있다 멋있다를 남발하던 때였다. 은희경의 '타인에게 말 걸기', 양귀자의 '모순', 신경숙의 '외딴방' 등 다양한 여성의 삶이 담긴 소설을 좋아했었다. 한국소설 다음으로 이어진 건 공지영 작가의 책 속에서 언급된 '무라카미하루키'의 책들이었다. 책방에 있는 그의 책들을 호기롭게 빌려와 주말 내내 독서애 매진하던 기억이 난다. 누가 용돈만 주면 책방에 적립금으로 쌓아놓고, 두 손 가득 책을 빌려올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울다가 웃다가 책 속에 묻혀 지내느라 사춘기도 없이 그냥 그 시절을 무던하게 흘려보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지금 다시 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어적 유희가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읽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우연히 집정리를 하다가 중학교 시절 많이 썼던 롤링페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친구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나에 대한 키워드는 대부분이 '문학소녀'였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쉬는 시간이나 틈만 나면 그렇게 학교에서 책을 읽고 또 읽었던 게 나였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한 친구의
글귀가 몇십 년이 지나도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책을 많이 읽고 글밭이 좋아서 아름다운 글을
많이 쓰는 너는 말 그대로 문학소녀 같다는 말.
조금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 같지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흐뭇했다.
열다섯 살 나이가 되면서 나는 새롭게 외국소설에 빠져들었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글귀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세상의 모든 딸들'을 읽으며 여자의 일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 속의 주인공처럼 나도 우리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바보 같은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완결되는 3권이 나오는 날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며 읽는 내내 발을 동동거렸던 기억, 구슬프게 꺼이꺼이 울었던 날 보고 엄마가 놀라 뛰어온 추억도 어렴풋이 회상해 본다.
에밀레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읽고서는 그녀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큰 인물이 되었을까 그녀의 천재성을 안타까워했었다. 퓰리쳐상을 받은 '앵무새 죽이기'는 사회문제를 다룬 소재의 어려움을 신선하게 펼쳐내 인상적이었다. 더 나아가 체코의 유명 작가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빌려 읽는데 그치지 않고 , 지금도 우리 집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들어선 내게 '소녀'라는 단어 가 나를 설레게 한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눈 떴고. '글'이라는 창작의 고통을 느끼고 배웠다. 결혼과 육아에 열정을 쏟아붓느라 많은 것을 놓쳤고 후회도 밀려들었다.
시대는 점점 빠르게 흘러가고 , 이제는 새로운 길로의 도약을 모색해야 한다. 문학소녀가 주는 친근한 어감이 다정한 글로 빛을 발하길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