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커피타임

당신의 커피취향은?

by 가온결

매서운 찬바람이 코끝을 시리게 하는 강추위의 연속, 나는 오늘도 얼어 죽어도 아이스 라테 한 잔의 커피타임을 가졌다. 추위를 피해 카페에 들어섰으면서도 고민 끝에 결국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건 무슨 아이러니일까.

자리에 앉아서 한 모금 들이키는 그 순간,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커피의 그윽함을 느끼며 가장 맛있는 천국을 경험한다. 그러다가 문득 내 인생 최초의 커피는 언제였을까 추억의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나 혼자만의 철칙이었을까. 내가 대학생이 되어 스무 살이 되면 꼭 하고 싶은 것 세 가지는 술, 커피, 화장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이 엄마의 믹스커피를 탐하며 인생 첫 커피에 입문한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믹스커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물조절이다. 하지만 첫 커피의 설렘도 잠시, 나는 물조절 실패로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세상 제일 맛없는 커피를 맛보았다. 두 번째 도전은 카페에서 어리바리 헤매다가 가장 싸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맛본 기억이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인생의 쓴맛은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내가 상상했던 커피의 맛을 뛰어넘어 아주 쓰고 덞뜨름한 맛은 아직도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구가 주문한 카페모카 한 모금을 맛보게 된 나는 커피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달달한 초코시럽과 휘핑크림까지 더해져 커피의 쓴맛이 중화되는 부드러운 느낌의 커피. 지금 생각해 보면 커알못이 커피에 입문하기 가장 좋은 메뉴였던 것 같다. 20살 때부터 커피와 인연을 쌓았으니 벌써 25년째 중독처럼 끊지 못하고 있는 커피는 내게 때로는 밥보다 더 맛있을 때가 종종 있다. 어느 순간 휘핑크림의 달달함이 과하게 여겨져 휘핑크림을 뺀 카페모카는 20대 그 시절 나의 최애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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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독하게 마음을 먹고 믹스커피라도 끊어보자 다짐했건만 두통 때문에 힘들었던 나는 사는 즐거움에 의미를 두고 결국 다시 마시게 되었다. 하루에 한 잔은 왠지 아쉬워 아침에 한 잔 오후에 한 잔 두 잔의 커피가

나에게는 생활의 활력소 같은 존재다. 그러나 한 때는 이 커피가 때론 생명줄 같다가도 독처럼 느껴지는 시기도 있었다. 처음 방송작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나는 다큐를 제작하는 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일반인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느라 비디오 분량은 어마무시했다. 막내작가의 인력으로 부족할 땐 프리뷰어를 써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여서 일주일에 2~3일은 밤을 새워야 하는 날도 많았다. 비교적 야행성이라 밤새는 일에 자신 있던 나였지만, 잠을 이겨가며 일하는 건 여간 곤혹스러웠다. 결국 잠을 줄이기 위한 차선책은 커피중독이었다. 그 당시 내가 먹었던 커피의 양은 하루에 대략 5잔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커피를 아무리 좋아해도 다섯 잔을 내리 카페모카로 먹는 건 쉽지 않았다.

아메리카노의 씁쓸함은 안 좋은 첫 느낌의 여운으로 패스, 카라멜마끼아또는 더 달달해서 패스, 카페라떼는 우유를 안 좋아했지만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우와, 나는 우유가 비려서 못 먹었는데 커피와 우유가 섞이니 조화로워.' 내 속마음은 이미 카페라떼에 빠져들었다. 이런 커피라면 열 잔 스무 잔도 거뜬히 마실 것 같은 진정한 커피러버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커피와 달리 아이스는 차가운 매력으로 갈증을 해소해 주고, 따뜻한 라떼는 온몸의 따뜻한 기운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밤낮이 바뀌어가며 열정을 불태웠던 나의 막내작가 시절은 극심한 커피사랑의 한 페이지와도 맞닿아있다.


그때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일까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좋아하는 일을 해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공휴일에 쉴 수 있다는 말에 덜컥 이직을 결정했고, 여의도에서 버티고 버티던 시절은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루 다섯 잔의 커피만큼 입봉이 절실한 시기였지만, 나는 작가 강아무개보다 여자 사람 강아무개를 선택했다. 내가 새롭게 근무한 곳은 결혼하기 전까지 가장 오래 근무한 나름의 방송국이었다. 명동에 위치해서 남산의 멋진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가파른 언덕길이 때론 힘들었지만, 출근길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걷노라면 나도 왠지 멋진 커리어우먼이 된 느낌이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1인에게는 단골카페가 하나 생겨났고, 퇴근 후에도 지인들과의 약속장소로 자리매김했다. 나중에는 젊은 사장님과 농담 따먹기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하루의 일과처럼 친근한 장소가 되었다. 가끔씩 명동을 지나칠 때면 카페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옛 추억에 잠기곤 한다.




나의 인생 2막, 결혼생활 속에서도 커피는 빼놓을 수 없는 단짝친구 같은 존재다. 연년생 전투육아를 하면서

믹스커피 본연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왜 엄마가 집안일하기 전에 믹스커피를 꼭 한 잔씩 드셨는지. 시골 할머니들이 고된 농사일에 믹스커피를 꿀떡꿀떡 넘기셨는지. 이심전심, 말하지 않아도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마법 같은 커피의 강력한 매력을......

바쁜 아침에 깜빡하고 식후땡 커피를 건너뛰면 바로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 이상현상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믹스 커피 두 봉지에 뜨거운 물을 붓고 얼음을 가득 채워 아이스로 마시면 그야말로 힘이 불끈 그 어떤 자양강장제도 따라올 수 없었다. 그 시절 육아전우 엄마들에게는 믹스커피가 주는 달달함이 엄마라는 위대함에 깊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요즘은 무지방, 디카페인, 바닐라, 돌체 등등 날이 갈수록 다양한 커피들이 새로운 옷을 입고 판매되고 있다. 카페메뉴도 특색 있게 개발된 메뉴들이 늘어나 이름조차 생소해서 주문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커피애호가로서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지만, 여전히 나의 최애메뉴는 아이스 카페라떼, 달달한 커피가 생각날 땐 바닐라 라떼이다. 마치 불변의 법칙처럼 한결같은 커피사랑은 나만의 소소한 힐링타임이기도 하다. 커피를 입에도 안 대는 남편에겐 사치처럼 느껴지고, 엄마의 커피사랑을 중독으로 보는 아들들에 볼맨소리에도 나는 요지부동이다. 아마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는 커피를 계속 마실 것이며, 쉽게 끊겠노라 장담할 수도 없다.

나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과의 수다타임은 내 스트레스 해소의 원천이고, 새로운 카페를 발견하는 재미는

또 다른 취미활동이다. 더 나아가 분기별로 열리는 커피박람회는 맛을 음미하며 즐기는 지적호기심의 집합소처럼 느껴진다. 두세 시간이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하루종일 전시회장 곳곳을 누비는 상상만 해도 정말로 행복했다. 이처럼 나의 일상은 커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돈독한 사이이다. 우울할 때 커피 한 잔을 들고 걷다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커피와 함께하는 독서타임은 언제나 땡큐한 시간이다. 이제는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글을 써 내려가는 새로운 루틴에 길들여지고 싶다. 또 누군가와 커피취향을 공유하며, 다양한 인연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싶은 바람도 있다. 커피가 나에게 주는 삶의 행복한 에너지를 또 다른 이에게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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