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허니문에서 베이비를 만날 줄이야

달콤함 속에 숨겨진 생명의 기적

by 가온결

살면서 들었던 말이 내게 다가오면 어느덧 현실이 된다.

우스개 소리로 결혼식은 두 번 할 일이 못된다는 이야길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는 전형적인 J형 인간인지라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을 후회 없이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나만의 계획에서 벗어나 삐그덕거렸다. 내 상상 속 결혼은 눈부신 5월의 신부로 반짝반짝 빛나길 바랬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우리의 결혼식 길일에는 5월에 좋은 날짜가 단 하나도 없었다. 결국 마음을 비우고 6월의 예쁜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남들 하는 건 다 해 봐야지. 결혼식을 준비하는 내내 시어머님께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조금 간소하게 하고 싶었지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감사히 받기로 하니 한결 수월해졌다.

맘에 드는 결혼식장과 시간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 이 또한 내려놓으니 크고 작은 갈등이 줄어들었다.

2011년에는 연예인들의 결혼식도 많았고, 갑작스러운 주변지인들의 결혼소식도 들려왔다.

그 여파 탓이었을까. 토요일 주말 오후 두 시의 결혼식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도에서 날아온 친정식구들은 구겨진 한복을 부여잡고 예식 10분 전에 도착하는 대참사 일어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피날레를 향해가는 결혼식에서 나는 '결혼도 결혼식도 두 번은 못 해.'라고 남몰래 다짐했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반환점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긴장이 탁 풀리고 말았다. 6개월여간의 결혼 준비가 단 한 시간 만에 끝나 버리다니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 만약 결혼해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언컨대 '허니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시대마다 유행의 흐름을 타는 신혼여행지가 존재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신혼여행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고, 9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도, 제주도 등이 떠오른다.

해외로의 신혼여행이 언제부터 대세를 이뤘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랑하는 이와의 꿈같은 여행은 벅차오르는 감동의 절정이다. 내가 결혼할 무렵에는 남태평양, 몰디브, 하와이 등이 사랑받는 여행지였다. 하와이 갈 돈을 보태서 유럽을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우리의 선택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코사무이섬이었다. 태국에서도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는데 여행사의 실수로 우리 커플은 명단에서 누락되고 말았다. 결국 여행사에서 사과의 뜻으로 좋은 컨디션의 숙소를 제공했고, 1박 2일의 방콕관광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덕분에 남편의 휴가는 이틀이나 늘어났고, 추후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부모님께서 세를 주는 집의 2층에서 첫 신접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부모님은 기특해하셨고, 내 주변 지인들은 '시댁' 아래층에 산다는 얘기에 경악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본디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며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뭐든지 카더라와 선입견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자취는 했지만 집안일을 많이 해보지 않은 터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만족스러운 허니문을 보내고 돌아와 일주일이 지났을까. 친하게 지내던 회사동생과 명동에서 약속을 잡은 어느 날이었다. 키가 크지 않아서 높은 굽의 구두를 즐겨 신던 나는 오래만의 외출에 룰루랄라 신이 났다. 근데 아침부터 이상하게 배가 슬금슬금 아픈 것이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골목길을 지나 지하철 계단 어귀를 내려가려는 순간 강력한 통증에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다. 평소엔 느껴보지 못한 아찔한 고통과 이상한 예감에 결국 약속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니겠지. 맞으면 어떡하지.' 불현듯 하나의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1년여의 짧은 연애 후, 결혼을 했기에 소위 말하듯 신혼을 좀 더 즐기고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계획했었다. 불안한 나의 마음을 토로하고자 다음날 아침 친정엄마에게 기분이 이상하다며 전화를 걸었다. 그때 내 얘기를 전해 들은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네버엔딩스토리 그 자체였다.



평소 꿈을 잘 꾸지 않는 엄마께서 내가 결혼식을 치르기도 전에 기묘한 꿈을 꾸셨다고 한다. 꿈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자꾸 밀어내도 엄마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나의 태몽임을 직감하셨노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의 예감도 맞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불현듯 어제 몸의 이상을 감지하지 못하고, 약속장소에 나갔다면 두고두고 후회했겠구나. 나의 예민한 감각과 촉이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발휘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려서부터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서 학창 시절에 옆집 동생들도 곧잘 봐주던 나였다. 그래서인지 모르는 아기들도 나만 보면 방긋방긋 웃는 게 예쁘고 신기했다. 그런 내가 진짜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테스트기 두 줄로 확인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아니 정말로 나에게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 맞았다. 시댁은 손이 귀한 집안이었고, 내색은 안 하셨지만 결혼 전부터 손주 걱정이 많으셨다고 고백하셨다. 그러던 중 임신 소식을 듣고 진짜인지 몇 번을 확인하셨고 남편도 예상보다 너무나 좋아했다. 나도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기쁜 마음이 더 앞섰다. 임신은 처음인지라 궁금한 것들이 넘쳐났고 검색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장 먼저 국민도서로 불리는 '임신출산 대백과'부터 며칠에 걸쳐 정독을 했다. 믹스커피 마니아였지만 첫 아이의 소중함을 지키고파 막달까지 독하게 커피를 끊었다. 임신 한 달이 지나자 귀신같이 물만 마셔도 토할 것 같은 입덧지옥에 빠져들었다. 또한 예쁘고 잘생긴 아이를 낳겠다는 일념으로 연예인들 사진을 직접 붙여만든 종이판넬을 매일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한 사람의 부모가 된다는 것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이 나의 일상의 잔잔한 파문이 되었다. 입덧이 끝나자 먹덧의 시기가 찾아왔고, 고기만 땡겨서 아들이겠거니 어느 정도 슬픈 예감을 직감했다. 딸을 낳아서 예쁜 공주님처럼 잘 키워보자 했던 나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의 성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직 뱃속아이의 건강한 탄생 그 자체였다.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인 건지 막달까지 태동이 없는 아이가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임신 6개월, 안정기에 접어들 때쯤 출판사 취재 알바를 갑자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혼자가 아닌 아이와 함께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더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일할 때의 즐거움을 아이도 아는 건지 꿈틀꿈틀 뱃속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마치 '엄마, 힘들어도 조금만 힘내요. 내가 있잖아요.' 보이지 않지만 내게 무한긍정의 에너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태어나는 순간까지 탯줄의 인연으로 엄마의 영양분을 공유하는 아이의 존재는 다시 생각해도 마냥 경이롭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위대한 모성애 속에서 '사랑'이라는 자양분을 밑거름 삼아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했다. 나를 지탱해 주는 뿌리가 없었다면, 하늘도 거스를 수 없는 천륜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을 살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엄마가 되는 게 두려웠지만, 이제는 엄마가 되어서 행복한 나는 육아로 고군분투했던 지난날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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