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몸이 두 개면 좋겠어

사랑을 나눠야 하는 숙명

by 가온결


첫째는 세 돌이 지난 후에도, 가능한 한 천천히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연년생 둘째가 태어난 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둘째는 아직 돌도 안 지났고, 나는 점점 육아가 버겁기 시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 걸려온 어린이집 입소 전화에 마음이 설렜다.

솔직히, 기쁘기까지 했다.

다만, 첫째는 의사 표현은 곧잘 했지만, 말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간절히 바랐다.

부디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계속 빌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던 날 아침,

실은 아이보다 내가 좀 더 떨렸다.

아이는 이제 꽉 찬 36개월, 세 살.

그런데 체격은 누가 봐도 네 살 반 같았다.

처음 어린이집에 가는 날인데도 사람들은 이미 다녀본 아이처럼 봤고,

말이 느리다는 것에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아직 말을 잘 못해요?”

웃으며 묻는 말투였지만, 엄마에게는 쉽지 않은 말이었다.


결국 입소 첫날, 웃픈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어

잠시잠깐 네 살반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선생님이 헷갈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른 아이보다 훨씬 큰 키,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은

어쩐지 익숙해 보였을 테니까.


9개월 된 둘째를 시어머님께 맡기고,

매일 아침 첫째의 손을 잡고 등원길에 나섰다.





"내 아이의 손을 오롯이 잡아본 적이 있었던가."


동생이 생기고부터는 늘 한 손엔 다른 짐이 있었고,

첫째의 손을 단단히 붙잡아준 기억이 희미해져 있었다.



그 무렵, 아이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아가 잘 때 나 안아줘.”

“나도 무릎 위에 앉고 싶어.”

“나도 먼저 책 읽어줘.”



그 말들이 자꾸 마음에 박혔다.

분명 둘 다 사랑하는데,

어쩔 땐 내 시간이 쪼개지는 만큼

아이의 마음도 갈라지는 것 같았다.


둘째가 낮잠 잘 때 부랴부랴 첫째를 안아주고,

첫째가 씻고 잠든 밤엔 둘째에게 젖병을 물렸다.

하루가 끝날 즈음이면 ‘오늘은 누구에게 조금 더 미안했나’

그 생각으로 눈을 감곤 했다.


내가 몸이 두 개면 좋겠다고 처음 생각한 건 그즈음이었다.

한쪽 팔은 첫째에게, 한쪽 팔은 둘째에게.

똑같은 온기로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큰 가방을 멘 아이는 의젓한 얼굴로 앞장서 걸었고,

나는 그 뒤에서 자꾸만 눈을 깜빡이며 따라갔다.


집에 돌아오니 너무 조용했다.


“한 명만 돌보는 게 이렇게 조용한 일이었나….”




조용한 집 안, 커피 한 잔을 조심스레 내리며

나는 조금 전 아이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를 떠올렸다.



‘사랑해. 오늘도 잘 놀고 와.’


그 말이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의 여백이 필요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사랑은 나눠줄수록 모자라지 않는다지만,

그걸 믿기까지 참 많은 밤을 지나야 했다.



순둥이 같던 아이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만 서면 매일 울음을 터뜨렸다.

낯선 선생님 품에 안긴 채, 눈물에 젖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돌아서야만 했던 수많은 아침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세 살 아이가 보내는 3주의 시간은 어른의 3년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 울다 웃고, 웃다 울며, 아이는 그렇게 천천히 익숙해져 갔다.

그날 아침만 해도 ‘왜 보내야 했을까’ 싶던 마음은 조금씩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한 아이를 안고, 다른 아이를 잠시 놓아야 하는 시간들.

이해받기보다 감당해야 하는 마음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마음으로 빌었다.

사랑을 나눠야 하는 숙명을

아이들도 나도 조금은 덜 아프게 견뎌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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