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울고, 또 달래고, 또 안고
아침이 밝으면 쨍한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한바탕 전쟁이 끝난다.
잠에서 깨기 싫은 형아, 옆에서 덩달아 칭얼대는 둘째,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가방을 챙기고,
유모차엔 형아, 아기띠엔 둘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마는 오늘도 들썩이는 하루를 끌고 출발한다.
형아는 제 발로 걷지만, 아직 마음이 덜 깬다.
“안 갈래...”를 중얼거리며 옷도 안 입겠다고 버틴다.
둘째는 옆에서 형아 흉내를 내며 “안 가요~”를 따라 하고,
나는 익숙한 멘트를 반복한다.
"형아 어린이집 가면, 엄마는 둘째랑 재밌는데 갈 거야."
그렇게 등원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나는 이미 오전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듯하다.
여름에는 숨 막히게 더워서, 겨울에는 열이 나서
내 등짝은 365일 땀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형아가 말하면, 둘째가 곧 따라 말하고
형아가 입은 옷이면, 자기도 꼭 그 옷을 입어야 하고
형아가 어린이집에 가면,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들고 “나도!” 외친다.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대견하면서도 짠하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집 앞 문을 밀고 교실 안으로 난입한 적도 있다.
가방도 없이 형아 옆에 당당히 앉은 둘째를 선생님이 다시 데려다주며 웃는다.
"아직은 안 돼요~"
형아의 하원길, 놀이터 일상 속에서도 둘째는 언제나 함께였다.
말은 완벽하지 않지만 분명 감초 같은 ‘존재감’이 있었다.
20명쯤 되는 아이들 속에서도
“줘!” “아냐!” “형아!” 짧은 단어들로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동갑내기 친구와는
말없이 미끄럼틀을 함께 타고, 모래를 옮긴다.
엄마 없이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준비된 사회성’을 갖춘 둘째는
생애 20개월 만에 드디어 어린이집에 입소하게 되었다.
평소 엄마 껌딱지라 혹독한 적응기간을 겪으리라
눈물이 앞을 가리겠구나 예상했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예상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빗나갔다.
눈물은 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생님을 따라
바이바이 쿨하게 들어가는 게 아닌가.
다소 황당하기도 하고 내가 서운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다음날 아침, 자기보다 훨씬 가방을 끌고 현관에 먼저 나가 기다렸다.
교실 문 앞에선 익숙한 듯 인사를 했고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부턴 진짜 오는 거죠? 교실도 이미 알아요.”
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둘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이 날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이제는 형아를 따라가는 아이가 아니라
자기 자리를 가진 한 사람으로, 새로운 세상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
둘째가 기저귀를 뗐다.
무슨 거창한 훈육이나 훈련을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어느 날, 스스로 변기에 앉았고,
그게 계기가 되어 스스로 해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때도 나는 매 순간 놀라움을 경험한다.
아이들은 늘 나의 예상보다 조금 더 빨리 자란다.
내가 붙잡고 있을까 봐, 더 빨리 달려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의 일상은 이제 새로운 2막을 앞두고 있었다.
그동안 시댁에 함께 살며 여러 상황을 견뎌온 시간들.
양가 가족에게 감사함도, 답답함도 있었던 그날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곧 처음으로 네 식구만의 보금자리로 이사할 예정이었다.
작은 집이지만, 우리끼리만의 공간.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집.
밤에 누워 셋이, 아니 넷이 손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실.
낮엔 들썩이고, 밤엔 축 늘어지고,
울다 웃다 싸우다 화해하며
조금씩 우리 가족만의 색깔로 채워질 공간이
두근두근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우리의 하루는 언제나 들썩였고,
내일도 어김없이 요동치겠지만,
이 소란스러움 속에 삶의 온기가 흐른다.
지나고 보면 가장 반짝이는 시간으로 기억될 그 순간들이 있기에
아이들이 채워주는 삶의 여백은 일곱 색깔 무지개의 향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