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안의 자식은 자라고 또 자란다

형도, 동생도, 엄마도 힘들다. 연년생의 현실

by 가온결


“무조건 1층이어야 해.”

아이들의 안전과 평온한 수면을 위해 내가 세운

첫 번째 이사 조건이었다.

매일매일 층간소음에 조심하며 살얼음판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발견한 곳은 시댁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창이 크고 햇살이 가득한 1층 빌라였다.

마당 대신 넓은 앞길이 펼쳐진 그곳은 우리 네 식구에게 딱 맞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사 첫날, 아이들의 반응은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첫째는 단단히 토라져서 “여기 안 갈래. 할머니 집이 좋아.”라고 말했다.

낯선 우리 집 대신 늘 익숙했던 할머니 집이 아이 마음속엔 더 편안한 ‘집’이었다.

밤이 되자 첫째는 이불속에서 훌쩍이며

눈물을 삼켰다. 나는 무척 서운하고 속상했지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썼다.


언제나 엄마와 붙어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둘째는 이 공간이 낯설다는 걸 알기에 더 애틋했다.

엄마 곁에 늘 붙어있던 아이가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참 신기하게도

적응의 동물이었다.

불안과 혼돈의 카오스를 겪었던 첫째도

엄마 껌딱지가 되어가며 점차 안정감을 찾아갔다.


시부모님 도움 없이 맞이하는 첫 독박육아 등원길은 5분이 50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예전 집보다 넓은 거실은 온갖 장난감이 점령했고,

큰 창문에는 아이들이 직접 붙인 글라스데코 스티커가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 과정에서 형제간 자리싸움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긴 내 자리야!” “아니야, 내가 먼저 앉았어!”

작은 방석 하나를 두고도 다투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 좀 해!”를 외쳤다.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고, 아이들은 각각의 억울함에 날마다 대성통곡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느 날, 첫째가 동생에게

장난감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자아가 자라나는 과정임을 알면서도 엄마인 나는 쉽사리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조금씩 아이들이 이 집과 서로에게 익숙해질 무렵,

우리의 여행 날짜가 성큼 다가왔다.

네 식구가 함께 떠나는 첫 해외여행,

목적지는 세부였다.



제주도여행에서 첫 비행기를 탈 때

불안감을 느꼈던 첫째는 이번에는 여유롭게

게이트 앞에서 “엄마, 여기서 찰칵!” 하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한편, 둘째는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귀가 아프다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간식도, 장난감도, 형이 건네는 물티슈도 소용없었고, 나는 결국 4시간이 넘는 비행 내내 아기띠를 메고 기내 복도를 오갔다.

이때부터 여행을 온 건지 극기훈련을 온 건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힘겨운 비행 내내 느꼈던 감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주변 승객들의 시선에 어깨가 무거웠고,

작은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나 또한 지쳐갔다.

하지만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잠든 그 순간,

세상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힘겨웠던 비행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은 휴양지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다.

3일 내내 이어진 물놀이로 아이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했고, 호핑투어를 즐기며 바닷속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낯선 음식도 용감하게 먹으며,

어느덧 여행의 여유를 만끽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뿌듯함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샹그릴라 해변의 햇살은 유난히 반짝반짝 빛났고,

사이좋게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들이키는 맥주 한 모금은 인생 최대의 파라다이스처럼 느껴졌다.


결혼으로 맺은 나의 단단한 인연들이

'가족'이라는 뿌리로 나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온전한 내 사람들이 나를 향해 웃어주고

묘한 설렘과 행복의 도파민이 나를 춤추게 했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축복 같은 선물처럼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품 안의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라고 또 자란다.

엄마인 나는 그 옆에서 한 걸음 느리게 따라가며

생애 모든 순간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는다.


어른의 빠르게 흘러가는 시계처럼

아이의 성장은 인생의 파도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자람의 기록 한가운데,

늘 엄마인 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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