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육아, 그래도 내일은 온다.

5살, 4살 연년생 형제의 육아 과도기

by 가온결

하루에도 열두 번, 아니 스무 번도 넘게 뒤집히는 사각 블록과 레고들.

발바닥에 콕콕 박히는 그 작은 블록 때문에,

잠시도 방심하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치워야지, 하면서도 아이들이 금세 다시 꺼낼 걸 알기에

결국 그대로 두고 자꾸 한숨만 내쉬었다.


그 시절, 우리 아이들의 최애 장난감은 또봇과 터닝메카드였다.

서로 먼저 가지겠다며 아침부터 쟁탈전이 벌어졌다.

“내 거야!” “아니야, 형이 먼저 집었어!”

결국 둘 다 울음으로 하루를 열었다.


얼마나 좋으면 잠들 때도 꼭 껴안고 자야 했을까.

머리맡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자다가도 “또봇 어딨어!” 하며 벌떡 일어나곤 했다.


장난감 전쟁은 잠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워워, 진정하자.’

마음을 다독이다가도, 내 몸이 지치고

피곤하면 결국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곤 했었다.

그리고 빠르게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미안해,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뜻 모를 사과하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했다.


그날은 특히 더 힘들었다. 아이들이 낮잠을 거부하고 하루 종일 깨어 있었던 날.

형은 쌓아둔 블록을 걷어차며 동생에게 화풀이했고, 동생은 머리를 맞아 대성통곡했다.

결국 형도 동생의 울음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두 아이의 울음소리가 뒤엉켜, 내 머릿속도 하얗게 멍해졌다.

‘이제 그만 좀 해…’

속으로만 되뇌다가 결국 나도 폭발해서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만 좀 해! 제발!”


아이들이 놀라 멈춰 섰을 때, 죄책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나도 내가 무섭다. 자꾸만 돌변하는 내가 굳어질까 두려웠다.

엄마인 내가, 이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덜컥 겁이 나고 괴로웠다.


둘째의 찢어질듯한 울음이 한 시간 정도 이어지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바로 옆 건물에 사는 젊은 남자가 불쑥 찾아온 것이다.

너무 시끄러워 온 지 알고 문틈 사이로 연거푸 사과를 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우편물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남자가 미성년자에게 몹쓸 짓을 한 성범죄자였다는 사실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무 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안도감에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세상 속에서 내가 이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데,

정작 나는 너무 나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내겐 더 큰 공허함이 찾아왔다. 경기도 인근에 살던 친정 부모님이

아빠의 고향인 전라도 해남으로 이사하셨다. 이사 전날, 텅 빈 부모님 집을 보며

이상하게도 내 안이 다 비어버린 것 같았다. 왠지 내가 빈껍데기가 된 기분이었다.


텅 빈 마음은 일주일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여름방학을 맞아 두 녀석을 데리고 집 근처 극장에 애니메이션을 보러 갔다.

혼자서 둘을 데리고 극장에 가는 건 두 번째였고, 아이들 먹을 팝콘과

내 커피를 들고 가느라 손이 부족했다.


방심하던 찰나, 둘째가 비틀거리며 발을 헛디뎌

상영관 에스컬레이터에서 대여섯 바퀴를 굴렀다.

먼저 올라간 첫째는 엄마와 동생이 구르는 걸 보고

크게 놀라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나는 등짝에 에스컬레이터 자국이 찍혔고, 이마가 파여 피가 철철 흘렀다.

그 당시 놀란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면서 쉽사리 진정되지 못했다.

천만다행으로 아이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체 큰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넘어지며 아이를 품에 안고 구르고, 밑에 계시던 아주머니도

함께 구르는 바람에 우리가 큰 보호막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모두들 천운이라고 할 정도로 아찔했던 순간.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하고,

등골이 서늘해진다.


엄마가 다쳤는데도, 아이들은 병원에서

금세 장난을 치고,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작 다섯 살 네 살이 뭘 알겠냐마는

그때 엄마인 나는 속에서 정말 천불이 났다.

내 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숨조차 고르기 힘든데,

엄마라는 이유로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6살, 5살이 되던 해, 우리 아이들에게도 킥보드가 하나씩 생겼다.

위험할까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씽씽 달리며

언덕길 내리막도 겁 없이 질주했다.

차가 오는지도 안 피하는 두 형제를 보면서,

나는 더 예민해지고 길 한복판에서

소리를 빽빽 지르며 교관 모드로 돌입했다.


“멈춰! 거기 멈추라고!!”

어느 날은 너무 위험한 찰나,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 첫째의 킥보드를

길가에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나의 폭력적인 모습에 현타가 왔다. 엄마인 내가 너무 무서웠다.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사람인 줄 몰랐다.


낮에 그렇게 혼내고도,

밤마다 잠들어 있는 천사 같은 아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미안해, 엄마가 많이 미안해…”

그렇게 되뇌며, 울음을 삼키던 나날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정말 어메이징, 전쟁 같은 하루하루였다.

그래도 내일은 온다라는 희망으로 버티고 또 버틴 것 같다. 날마다 전쟁 같은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지나갔으니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이들이 자랐어도

언제나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한 엄마이고 싶다.

오늘도 아이들이 잠든 밤,

나는 매번 새로운 다짐을 하며 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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