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역사는 흐르고 쌓인다

낯선 동네, 이방인 같은 엄마

by 가온결

결혼 7년 차, 우리는 갑작스럽게

학군지로 이사를 결정했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이 더 적극적이었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해.

초등학교 배정받고 나면 늦어.”


나는 다소 당황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이 마음을 흔들었다.

“학군이 좋아야 애들이 달라져.”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사해야 돼.”

“거기 애들 수준이 다르대.”


수준.

참 무섭고도 낯선 단어였다.

내 아이가 더 낫길 바라는 마음인지,

뒤처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인지.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이사 당일,

분가와 동시에 내 집마련을 했던 우리가

3년 만에 낯선 동네로 이사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생소한 풍경을 멀리서 지켜보며,

‘이 동네 사람들 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컸다.


며칠 뒤, 동네 적응을 위해

아이들 어린이집부터 알아봤다.

집 바로 앞, 걸어서 5분 거리에 어린이집이 있었다.

“여기 아이들 수준이 좋아요.”

선생님의 말이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서글프게 들렸을까.

수준이 좋다니.

아이들은 아직 겨우 일곱 살, 여섯 살인데.


당분간 형아 누나들과 함께할

둘째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첫날은 울지 않을까, 밥은 잘 먹을까,

엄마를 찾으며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내 걱정과 달리 둘째는 의젓했다.


“엄마, 나 어린이집 다녀왔어.”

그 한마디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그러나 어린이집 앞에서

마주친 엄마들의 모습은

또 다른 낯설음이었다.


하원 시간, 교실 앞에는 이미 여러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3살 반 때부터 같이 다녀서 애들도 친해요.”

“맞아, 우리는 작년부터 같은 반이었잖아.”


그들의 대화 속에 끼어들 수 없었다.

나는 이 동네의, 이 어린이집의,

‘3살 반부터 형성된 엄마들 분위기’ 속에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 같았다.


아이들은 해맑게, 조금씩 잘 적응해 나갔다.

첫째는 금세 친구를 사귀었고,

둘째도 울지 않고 교실에 들어갔다.

형아와 동생, 둘 다 선생님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새로운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도,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도,

장 보러 가는 마트도,

모두 낯설기만 했다.


동네부터가 적응이 안 되었다.

어디를 가도 나는 초대받지 못한 사람 같았다.

엄마들 무리 속에서도,

골목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심지어 어린이집 앞에서도

나는 늘 낯선 이방인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 와중에 재미있는 변화도 있었다.

어린이집을 옮기자마자 첫째는

갑자기 종이 접기에 빠졌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독학으로

매일 색종이를 접었다.

어린이집에서 배우고 온 것들을

집에서 복습하듯 반복했고,

곧이어 색종이 수집과 종이접기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봐. 두루마리 휴지야.”

“이건 미사일이야. 이건 로켓.”


손끝으로 종이를 접고 펼치고

뒤집으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했다.

작고 여린 손가락들이

이렇게 섬세하게 움직이다니.

첫째는 그렇게 종이 접기에 매진하며,

새로운 환경에서도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반면 둘째는 노는 게 제일 좋았다.

마치 뽀로로처럼, 언제나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6살 후반 무렵,

첫째보다 늦게 한글 공부를 시작했는데

형이 하는 학습지 공부

옆에서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서일까.

생각보다 한글을 많이 알아,

나도 선생님도 깜짝 놀랐다.


“둘째가 한글을 꽤 아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말했다.


둘째는 뭐든 빠르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형이 하는 걸 곁에서 보고 따라 하는

반전의 재능이 있었다.


또래보다 발달이 빨랐던 첫째는

싫다는 법 없이 어린이집도 잘 다녔다.

한 번도 가기 싫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린이집 졸업식을 앞둔 일주일,

갑자기 등원을 거부했다.


아침마다 울음을 터뜨리고,

“가기 싫어, 엄마 싫어!”

발버둥을 치며 때를 부렸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는 몹시 당황했다.


선생님께 여쭤보니,

“발표가 있어서 그런가 봐요.

무대 공포증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아요.”

라고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이 사소한 일련의 행동들이

첫째의 내면에 깃든 불안함과

예민함의 신호였는지.


아이가 발표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그 작은 몸 안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과 두려움이 있다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그저, 학군 좋은 동네에 왔으니

잘 적응하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학군이나 더 좋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을 읽어주는 ‘엄마의 시선’이었다.


오후 4시쯤, 어린이집 하원길.

아이 둘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았다.


작은 손, 따뜻한 체온,

아직은 세상에 물들지 않은 눈빛.

그 눈빛을 보며 다짐했다.


‘그래, 조금 늦어도 괜찮아.

남들이 뭐라든, 우리만의 속도로 가면 돼.’


그날 저녁, 아이들은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다.

형아는 동생에게 춤을 가르쳐주었고,

동생은 까르르 웃으며 형아를 따라 했다.


“엄마, 이사 와서 좋아.”

형아가 말했다.


“왜?”

내가 물었다.


“어린이집도 좋고, 동네도 깨끗하고

놀이터도 많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낯선 동네가 조금은

내 동네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학원도 많고,

모르는 엄마들도 많고,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

아이들이 웃으며 돌아왔다는 것.

그게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곳이 우리 집이 될 때까지,

이 동네가 내 동네가 될 때까지,

조금씩,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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