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앗아간 아이들의 계절
2020년 초,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하던 무렵.
우리 가족은 운 좋게 푸꾸옥으로 마지막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과 바다에 풍덩, 코코넛 음료에 반쯤 취한 채로 “이래서 다들 동남아 오는 거구나”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평화롭던 나날이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그땐 정말 몰랐다.
집에 돌아와 시댁 식구들과 평창으로 1박 2일 겨울여행도 다녀왔다.
그땐 마스크를 쓴 몇몇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왜 벌써 저러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그 마스크가 우리 삶을 완전히 지배하게 될 줄이야. 여행은 언제든 갈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순식간에 멈출 줄이야.
마스크는 '외출할 때 챙기는 물건'이 아니라
‘내 몸의 일부’가 되었고,
아이들의 일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어린이집 졸업식도, 초등학교 입학식도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둘째는 마음 둘 곳을
잃은 듯 하루가 다르게 예민해졌다.
평소에도 감정기복이 크던 아이였지만, 코로나는 그 아이의 세상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하고 싶었던 건 줄줄이 취소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짜증이 늘어났다.
첫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슬기로운 1학년 생활을 잘 마치고 맞은 방학. 개학은 자꾸 미뤄졌고, 결국 한 학기 전체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던 중 남편 회사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우리는 밤새 짐을 싸서 해남 친정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일주일만 있자.”
그랬던 게 3주.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집은, 그 순간 우리에겐 낯선 타인이 되어 있었다.
해남에서의 생활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혼란이었다.
낯선 방, 달라진 생활 리듬, 그리고 불안.
이산가족처럼 지내던 그 시간은 지금도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텐데, 그땐 알아차리지 못했다. ‘애들이 조금 힘든 거지 뭐’, ‘다들 이 시기를 겪고 있으니까’ 하며 넘겼다. 그게 나중에 얼마나 큰 후회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수업에 집중을 잘 못 해요.”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조금 힘든 것 같아요.”
단순히 산만한가 싶었다.
아직 어리니까. 그런 거겠지.
하지만 며칠 뒤 담임선생님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고도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님, 혹시… 가까운 기관에서 심리상담을 한번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 애가 상담을 받아야 해?’
‘혹시 내가 잘못 키운 걸까?’
자책, 당혹, 서운함.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은 곧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조금 더 심해지기 전에, 지금 이 시점에 도와줄 수 있다면… 아이한텐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지금까지 아이의 신호를 무심히 넘겨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몰려왔다.
바로 다음 주, 가까운 심리상담센터를 예약했다.
학교 부적응 관련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소아 우울, 자존감 저하, 무기력 증상.
진단지를 받는 순간 손이 떨렸다.
우리 아이는 괜찮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표현하지 못한 감정의 덩어리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놀이치료는 부모 선택이었다.
꼭 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뱉지 못한 말을 풀어내기 위해선, 무언가 해야만 했다.
장난감으로 시작되는 대화, 그림 속에 숨어 있는 감정들.
치료 첫날, 아이는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이 마음속 문을 너무 오래 닫게 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시간이 흐르자 아이는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치료 선생님과의 신뢰가 생기고,
표현이 조금씩 늘어났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내가 싫어’라는
말을 자주 하던 아이가
“오늘 친구랑 놀았어”, “나 이거 할 수 있어” 같은 말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6학년이 된 지금, 둘째는 매일 등교하고 학교생활을 즐긴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모둠활동도 나서서 하겠다고 한다.
한때 ‘학교 가기 싫어’라고 하던 아이가
‘학교 재밌어’라고 말할 때, 울컥했다.
그리고 처음 상담을 제안해 주신
담임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솔직히 서운했다.
내 아이가 이상하다는 뜻인가? 싶어서.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꺼내주신 용기에,
진심으로 고개 숙이게 된다.
육아는 답이 없고, 부모는 늘 시행착오 중이다.
특히 연년생을 키우며 팬데믹을 통과한
우리 세대는
매일같이 새로운 ‘에러 메시지’를 마주하며,
엄마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내가 매번 완벽한 엄마가 될 수는 없지만,
아이의 마음에 더 가까이 가고자
노력하는 엄마는 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