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과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코로나가 막바지로 접어들던 해 봄,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간다는
사실만으로 숨통이 트였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친구와 장난치는 모습조차 고맙게 느껴졌다.
3년 가까이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는 듯했다.
둘째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슬기로운 학교생활’을 맛봤다.
매일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게
마냥 신기한 듯, 어색하면서도 들뜬 표정이었다. 가끔은 친구 얘기를 쏟아내느라
밥을 씹는지 삼키는지 모를 정도였다.
반면, 장난기 가득하던 첫째는 4학년이 되자 조금씩 달라졌다. 말수가 줄고, 표정이 단단하게 굳는 날이 많아졌다. 그 밝던 얼굴이,
어느새 내 앞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새 학기 2주는 오히려 둘째보다 첫째가 더 힘들어했다. 학교 가기 전날이면 이불속에서 한참을 뒹굴고, 다녀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저 사춘기의 문턱에 선 변화일 거라,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무렵,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코로나 여파로 혼자 근무하기 힘들어진
시누이의 약국에서 일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도 이제 컸으니 나도 일을 해볼까…”
마음속에 간직해 왔던 생각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다만, 약국이라는 생뚱맞은 무대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혼 11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다.
반나절 근무였지만, 집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작은 충격이었나 보다.
처음엔 “엄마 언제 와?” “왜 맨날 없어?” 하며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나 역시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집 안에 아이들 목소리가 없는
그 적막이 낯설고 허전했다.
특히 겨울방학 내내 집 안을 가득 메우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오후는,
희한하게도 내 마음 한구석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한 달쯤 지나자 아이들은 학교에,
나는 약국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갔다.
가끔은 근무가 없는 주말에 둘째와
단둘이 디저트를 먹으러 가곤 했다.
“엄마, 이거 내가 사줄게!”
그 말 뒤엔 늘 내가 계산을 했지만,
그런 제스처가 고마웠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과 사소한 수다 속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엄마와 아들’이 아닌
‘다정한 친구’처럼 웃었다.
그 평범한 시간이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다시 찾은 일상은 말 그대로 눈물겹게 빛났다.
하지만 첫째는 달랐다.
밖에 나가는 걸 점점 싫어했고,
주말에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같이 마트 갈래?”
“안 가.”
“그럼 산책이라도…”
“귀찮아.”
짧은 대답은 점점 무표정과 함께 돌아왔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전초전이라는 걸.
어느 날, 첫째가 게임에 푹 빠졌다.
처음엔 그저 새로운 놀이를 찾은 줄 알았다.
하지만 타고난 예민함과 유난한 승부욕이
게임 속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승부에 집착하고, 지면 분을 삭이지 못했다.
하루 두세 판이 전부였던 게임 시간이 조금씩 늘더니, 어느새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게임 그만하고 밥 먹자.”
“잠깐만, 이거 끝나고.”
“아까도 잠 깐 만이라더니 두 시간이나 했잖아.”
“아… 진짜! 왜 맨날 나만 뭐라 해?”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숨을 고르려 했지만,
이미 화가 목까지 차올랐다.
결국 태블릿을 빼앗아 전원을 꺼버렸다.
순간, 첫째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 표정은 분명, 내가 알던
내 아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아이는 속상한 지
눈물을 쏟아내며 밥을 먹었다.
숟가락을 움직이는 소리만,
무겁게 집안을 맴돌았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잘못 건드리면 더 멀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붙잡았다.
그 침묵은 벽이었다.
그 밝고 순했던 아이의 흔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문 앞에서 몇 번이고
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무슨 말을 해도 닿지 않을 것 같아서.
둘째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엄마, 형 화났어?”
“아니야… 그냥 좀 짜증 난 거야.”
하지만 그 대답은 둘째를 위한 거지,
내 마음을 위한 건 아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는 걸.
이렇듯 큰아이의 사춘기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 그 자체였다.
내 일상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에 장담할 수 있는 건 없고,
자식 일은 더더욱 그렇다는 걸.
아이가 어떤 길로 걸어갈지,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옆에서 함께 걷는 것뿐이었다.
아이와 나 사이에 흐르는 낯선 공기.
그 속에서 나는, 매일 작게 다짐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아직 이 아이는 내 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