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마주한 마음
첫째가 상담을 위해 센터에 들어선 날,
장시간 이어진 검사로 힘들어했다.
처음엔 소장님과 눈을 맞추는 것조차
버거워했고, 단순한 질문에도 힘겹게 대답했다.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신경을 쓰며
몸을 움츠리고, 나조차 긴장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상황에 적응했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작은 박수를 보내며
그 과정을 지켜봤다.
부모 상담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 안의 문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내 감정,
화를 내던 순간, 아이에게 강하게 요구하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반성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애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동시에 내 마음도
정리되는 시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같은 상황에서 목소리를
높였을 테지만, 상담을 거듭하며 점차 언성을 높이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이 역시 화를 내는 빈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한 어미의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는 말처럼
둘째는 첫째와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첫째가 점점 소극적이고 집돌이가 되어가는 동안, 둘째는 하교 후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장난을 치고, 크고 작은 문제를 종종 일으켰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끔 걸려오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에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았다.
나는 늘 고개를 숙이며 “가정에서 잘 지도하겠다”라고 말씀드렸다. 혼자서는 조용하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천방지축, 제어가 어려운 모습이었다. 자식은 어중간하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전쟁도 여전했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첫째를 깨우고,
등교시간을 맞추기 위해 채근하는 과정은
늘 긴장과 피로를 동반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눈치를 보고,
나는 속으로 조바심을 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상담을 이어가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아이와의 충돌이 줄어들고, 아침의 긴장감도 점차 완화되었다.
놀이치료 시간은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눈을 피하며 말을 아끼던 아이가 보드게임을 통해 내면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놀이치료라는 방식이 이렇게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며, 아이가 마음을 조금씩
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부모 상담을 하면서 나는 내 양육 방식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과거에는 ‘내가 이렇게 키웠으니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아이가 힘들어할 때
내 방식대로만 끌어왔던 순간을 떠올리며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상담이 반복될수록,
나는 마음을 비우고 아이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그 변화는 서서히 집안에서도 나타났다.
첫째의 불안감이 조금씩 줄어들고,
작은 성취에도 스스로 만족하며 미소를 보였다. 둘째 역시 형과의 관계에서 조금 더 배려심을 배우고, 장난이 과해 문제를 일으킬 때도
내 반응이 달라지자 상황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왜 더 빨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상담을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면,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감정의 악순환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이해하며, 함께 성장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아이와 내가 마주한 시간은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검사와 상담, 놀이치료 과정에서
아이는 힘들어했고, 나 역시 부모로서
고민과 후회를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필요했고,
서로에게 조금씩 적응하며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라는
말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배우는 시간을 놓치지 않겠다고.
아이도 나도 완벽하지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만으로
하루하루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실랑이, 눈물, 장난, 화…
그 모든 순간이 쌓여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나는 아이를 기다리고, 아이는 나를 기다린다.
서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서툴러도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
이 낯선 사춘기의 터널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아이와 내가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가슴속 깊이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