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는 낯선 강을 건너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

by 가온결


단순하고 순한 성격이라 믿었던

첫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새 학기부터였다.

주말에도 아침 7시면 저절로

일어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아침밥을 꼭 챙겨 먹던 아이였는데,

등교 시간이 코앞인데도

침대에서 나오질 못했다.


“일어나, 이제 8시 반이야. 늦겠어.”

매일 아침 같은 말이 반복됐다.

하지만 아이는 몸을 돌릴 뿐,

좀처럼 일어나질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지각을 하는 게

당연해졌고, 감기에 걸려 하루 학교를 쉬면

그 뒤로 이틀은 더 가기 싫다고 버텼다.


나는 출근해야 했고, 아이는 학교에 가야 했다. 서로 각자의 시간을 지켜야 하는데

아침마다 늘 부딪혔다. 하루의 시작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좋다는 방법은 다 써봤다.

아침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기도 했고,

전날 밤에는 “내일은 꼭 잘 일어나자”

다짐을 시켜보기도 했다. 남편은 출근 후에도 모닝콜을 해줬지만 효과는 길어야 며칠뿐이었다. 심지어 인근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부탁해 아이를 달래서

등교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단골 한의원까지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급성장기에 갑작스러운

부정맥 증상이 와서 아침에 더 일어나기

힘들 수 있다”라고 했다. 아픈 건가 싶어

보약까지 챙겨 먹였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5학년과 6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두 달 동안 아이의 결석 일수는 20일 가까이 됐다.

출석부에 빈칸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특히 잊히지 않는 날이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아침이었다.

나는 이미 회사에 지각이었지만

출근은 해야 했고, 아이는 9시 등교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교문 앞에서 아이와

15분 가까이 실랑이를 벌였다.


주목받는 게 싫다며 발걸음을 떼지 않던

아이는 결국 빗속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차마 우산도 쓰지 않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자 나도 함께 눈물이 났다.

결국 그날은 교문 앞에서 아이와

내가 나란히 울며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한 건, 막상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선생님 말씀으로는 학교생활에 큰 문제도 없다고 했다.

집에서 보이는 모습과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은 극과 극이었다.

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 무렵부터 게임에 매달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게임에서 지기라도 하면 소리를 지르고,

발을 쿵쿵거려 층간소음이 생겼다.

나는 매번 이웃집에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하지만 아이를 혼낼수록 오히려 더 크게 터졌다. 화산이 폭발하듯 통제가 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건 동생에게 폭력을 쓰는 모습이었다. 게임을 같이 하다 자기 말을 안 들어주면

손찌검을 했다. 그제야 우리 부부는 사태가

단순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혹시 게임 중독이나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심리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처음엔 강하게 거부했지만, 세 번의 설득 끝에 아이도 동의했다.


그 시절 나는 지쳐 있었다. 밥맛이 없어

살이 빠졌고, 괜히 사람 만나기도 싫었다.

대인 기피가 생겼고, 혼자 있을 때는

눈물이 뚝뚝 쏟아졌다.


선배맘들이 말하던

“지랄총량의 법칙”이 떠올랐다.

어릴 때 순하다고 평생 순한 게 아니고,

아이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

지나고 보니 다 맞는 말이었다.


검사 결과는 의외였다. 게임 중독이나 분노 조절 장애보다는 사춘기가 남들보다 일찍, 그리고 강하게 온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여기에 불안한 심리와

낯선 대인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이

겹쳐 문제로 드러난 것이었다.


전문가의 권유에 따라 나는 부모 상담을,

아이는 놀이 치료를 받기로 했다.

첫 부모 상담 자리에서

어린 시절 아이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게 보였다.


순하고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아이였지만

사실은 자기표현을 잘 못했던 게 시작이었다.

그 모습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모습으로 나온 거였다.


나는 눈물이 터졌다.

모든 게 내 잘못 같았다.

내가 아이를 몰라줬고, 내 방식대로만

끌고 와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괜한 자책이 밀려왔다.


그러나 상담 선생님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에 숨통이 트였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이라도 아이를 제대로 알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아이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순하고 착하기만 한 줄 알았던

아이가 사실은 마음속에서 울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아이마다 시기는 다르다.

우리 아이에게는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세게 왔을 뿐이다.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은 나를 단련시켰고,

아이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부모라는 이름이 결코 쉽지 않음을

또 한 번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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