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우리 가족이 무너졌던 날

작은 허용이 만든 큰 균열

by 가온결

코로나라는 단어가

처음 뉴스에 등장했을 때,

우리 가족은 그저 조심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손 잘 씻고, 외출 줄이고, 마스크만

착용 잘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누구도 몰랐다.


그리고 그 긴 터널의 끝에서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될지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처음엔 온라인 수업이 신기했다.

학교 안 가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그게 뭐가 문제야 싶었다.

아이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달라졌다.

수업은 형식적으로 흘러갔고,

아이는 점점 화면을 보는 데 지쳐갔다.

집중은 커녕 화면 속 선생님 목소리는

배경음에 가까웠고, 숙제는 부모 몫이 됐다.


저학년이었던 첫째는

점점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줄고,

손에는 색연필 대신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그걸 보면서도 나는, ‘곧 괜찮아지겠지’ 했다.

안 괜찮아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와중에 나는 ‘기초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수학과 국어도 이 시기에

제대로 다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수학학원을 등록했다.

아이도 처음엔 신나 했다

새로운 공간, 선생님, 친구들.

하지만 그 시작이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평범한 주말이었다. 첫째가 목이 아프다면서 갑자기 열이 났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시부모님께서 아프기 시작했고,

둘째도, 나도 쓰러졌다. 바로 코로나였다.

우리 가족을 그렇게도 비껴가던 그 바이러스가, 드디어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온 거였다.

남편만 멀쩡했다. 그건 감사한 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건강한 남편은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 혼자 자고,

혼자 생활해야만 했다.


확진자인 나는 아이들과 함께

아픈 몸을 끌고 그야말로 생존을 버텨야 했다.

목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약을 먹어도 열은 내려가지 않았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니까,

아파도 눈을 떠야 했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아팠고,

내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배달음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아이들이 배달 온 음식 포장을

뜯는 소리가 하루 중 유일한 활력 같았다.


잠은 약발로 잠깐잠깐 들었다.

눈을 뜨면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손댈 기운도, 밖에 나가 버릴 수도 없었다.

눈물이 날 틈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3일쯤 지나자 열이 조금 가셨다.

‘살겠다’는 말이 그냥 나왔다.

그 일주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가장 지독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변화는 그때부터였다.



겨울방학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고, 몸이 회복된 이후에도 계속 집에 머물렀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에너지는 넘치는데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손댄 게 게임이었다.


처음엔 나도 봐줬다. “친구들이 다 한대”,

“이거 진짜 재밌대” 같은 말에 마음이 약해졌다. 핸드폰은 일부러 늦게 사줬지만, 결국은 사줬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첫째는 기계에 큰 관심이 없던 아이였다.

블록 맞추기를 좋아했고,

엄마 옆에서 종이접기를 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게임을 접한 후, 아이는 눈빛이 바뀌었다. 뭔가에 푹 빠진 듯한 눈. 내가 불러도 대답이 느려지고, 문제집을 펴도 집중을 못 하고,

점점 고집이 세졌다.


“엄마, 이거 한 판만 하고 할게”

“진짜 마지막이야”라는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거짓말이 늘었다. 하지 말라 한 걸 하고,

하고 나서 말하고, 그러곤 다시 울고.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냥

‘아이의 일시적 반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반항’이 아니라 ‘반란’이었다.


그 아이가 조용히 쌓아온 욕구와 결핍,

외로움과 지루함이, ‘게임’이라는 매개로

폭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 늦게 그걸 알아차렸다.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또 뺏으면 나 도망갈 거야.”

그 말에 멍해졌다. 그게 무슨 말인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도 안 됐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아이가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엔 서운함과 억울함,

화남과 슬픔이 다 섞여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 게임을 허락했던 그날? 수학학원을 보낸 날? 코로나에 걸린 그 주?


아니,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무언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내 태도.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라는

식의 일방적인 사랑.

아이에게도 설명이 필요했고,

선택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걸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우리는 아이를 키운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같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코로나는 끝났지만,

그때 생긴 균열은 아직 그대로였다.

게임이라는 작은 틈에서 시작된 반란은,

어느새 우리 가족 전체에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이야기들.

지금이 아니었으면 듣지 못했을 아이의 속마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아이 옆에 앉는다. 기계를 내려놓게 하려고 설득하고,

화내고, 안고, 타협하며

오늘도 조금씩 흔들리는 엄마의 하루.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아이의 사춘기보다

더 복잡한 ‘사전 반란기’를 버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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