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더라와 진짜 삶 사이에서

7년 후, 부질없음을 깨닫다

by 가온결

첫째는 무대에 서는 걸 유난히 싫어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노래도, 율동도 하지 못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어린이집 졸업식 무대 위에서

까치발을 들고 작은 목소리로나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인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래도 이렇게 자라는구나.’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초등학교 입학 준비가 시작되자

불안이 몰려왔다.


“여기 초등학교 애들, 영어유치원 다니던 애들이 수두룩하다더라.”

“의사, 변호사, 교수 집 아이들이 많대.”

“이 동네 학부모들은 진짜 빡세대.”


카더라는 언제나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이사 온 지 1년도 안 된 우리 가족.

낯선 동네에서, 낯선 학교에서,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나는 또 밤새 핸드폰을 붙들고

‘초등학교 입학 준비 체크리스트’

‘1학년 학습격차’

같은 검색어를 반복했다.


하지만, 화면 속 정보들은 내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오히려 더 초조해지고, 숨이 막혔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다 잠이 들었다.

걱정이 많아도, 결국 내일은 오니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웃음이 난다.


학군지 7년 차를 살아보니

그때의 카더라가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난히 인자하신 연세 있는 담임선생님,

매사 적극적이고 살가운 반대표 엄마,

그리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첫째 친구 엄마들.


내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

손을 내밀어준 그 마음의 여운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있다.


아이는 생활체육으로 시작된 반축구에서

처음으로 단체 운동의 재미를 느꼈다.

경기를 한다고 하면, 신나서 전날 밤부터

축구화를 꺼내놓고 설레하던 첫째.


동생인 둘째도, 형아가 뛰는 축구장을

저녁마다 구경하러 따라갔다.

작은 응원단 같았던 둘째의 박수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반축구가 계기가 되어, 다른 팀과의

친선 경기에도 나가게 되었고,

초등학교 입학과 1학년 생활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갔다.


하고 싶은 게 많아, 방과 후 수업도

이것저것 다 신청하고,

하교 후에는 놀이터로 직행.


같은 달에 태어난 친구들과의 생일파티,

매일 새롭고 신나는 일들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아이들도,

‘이사오길 참 잘했다.’

라고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들은 부유하게 살아도

남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담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오히려 더 착하고

심성이 곱고, 배려심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처음엔 학부모들의 수준과 경제력에

주눅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도, 엄마도,

이 동네와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며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폭풍전야가 그러하듯,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때는 몰랐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코로나가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이렇게 무너뜨릴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학교가 멈추고,

온라인 수업,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소독, 확진자 동선 확인…


이제 막 적응하기 시작한 초등학교 생활은

갑자기 ‘비대면 수업’이라는

낯설고 버거운 현실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엄마로서의 나의 시간도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걱정으로 시작된 초등학교 입학.

하지만 진짜 시련은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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