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육아, 즐거움에 날개를 달다

5살, 6살, 7살 – 내 육아의 황금기

by 가온결


육아가 늘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나에게도,

참으로 즐겁고 눈부셨던 시기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이자,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드디어 온전한 자유시간이 생겼다.

아침에 두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이제 나를 돌볼 시간이야.’


4년 만에 처음으로 큰 목표를 세웠다.

헬스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

출근하듯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곧바로 헬스장으로 직행했다.

첫날, 운동화 끈을 묶는데 괜히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 운동하러 가는 것도,

내 몫의 삶을 사는 거구나.'


거울 속 땀에 젖은 얼굴은 지쳐 있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단단한 의지가 반짝였다.

“하… 죽겠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중얼거리면서도

매 순간 포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로 매일 운동을 이어간 결과,

6개월 만에 무려 12kg을 감량했다.


몸무게만 줄어든 게 아니었다.

운동을 하니 체력이 좋아졌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짜증이 줄었다.

작은 일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도 달라진 엄마를 반겼다.

“엄마, 오늘도 운동 갔다 왔어?”

“응, 엄마 힘 세졌어. 너희 많이 안아주려고.”

그 말에 두 녀석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 웃음이, 내게는 또 다른 힘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아이들의 다양한 경험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또봇, 터닝메카드, 시크릿쥬쥬.

그 시절 유행하던 캐릭터 뮤지컬은

시간을 내서 일부러 데리고 다녔다.


“엄마, 오늘은 뭐 보러 가?”

아이들의 기대 어린 눈빛을 보면

나의 피곤함도 금세 잊어버렸다.


생애 첫 뮤지컬 코코몽을 보던 날이 생각난다.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가 암전 되자

둘째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엄마… 무서워…”

결국 30분 만에 퇴장했지만,

그때도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5살이던 둘째의 최대 특기는

무조건 숨바꼭질이었다.

눈만 돌리면 어디로든 사라졌다.

어느 날, 급히 화장실을 가면서 첫째에게 말했다.

“잠깐만, 동생 좀 붙잡고 있어.”


그런데 옷을 붙잡아도 도망가려는

째를 첫째가 목을 붙잡고 있어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야야야, 목은 안돼! 옷만 잡아!”


첫째는 잠시 당황했지만

안간힘을 다해 동생을 꽉 붙잡은 모습이

제법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칼바람 부는 어느 겨울밤,

외할머니 찬스로 청계천 빛축제에도 함께 갔다.

밤늦게 외출에 신이 난 아이들은

“우와, 로보카폴리 등불이다!”

깨방정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빨개졌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따뜻했다.


그 시절 생애 첫 교통사고도 경험하고 말았다.

평온한 어느 날, 장을 보고 나오던 길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던 차가 갑자기 내 쪽으로 직진해

피할 겨를도 없이 다리에 부딪혔다.


“아…!”

순간 다리에 타박상이 느껴졌지만,

아이들 하원 시간이 떠올라

명함 한 장만 받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차가 내 쪽으로 돌진하던 순간,

‘내가 잘못되면 우리 아이들은 어쩌지?’

짧은 찰나 오직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었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꽤나 고생했었다.


아이들은 연년생이라 둘이 잘 놀았지만,

엄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돌아가며

일주일에 한 번씩 어린이집을 쉬게 하고

박물관이나 체험 전시를 각각 데리고 다녔다.


“엄마, 나 오늘 형 없이 엄마랑 데이트야?”

“그럼~ 오늘은 네 날이야.”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행복해했다.

늘 사랑을 나눠야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분가 3년 만에

갑작스러운 이사를 하게 됐다.

나는 어디서 살든 공부는 스스로 한다고

믿었지만, 남편은 학군지를 고집했다.


“큰애 8살 되면 이사 가자.”

그러더니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자며

갑작스럽게 이사가 결정되었다.

결국 7살인 첫째는 다니던 어린이집을

졸업도 못 하고 떠나야 했다.


“엄마, 나 졸업하고 가면 안 돼?”

첫째의 서운한 표정이

지금도 마음 언저리에 남아있다.


급히 이사 갈 집 근처 어린이집을 찾았지만,

6살 둘째는 몇 달을 대기해야 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첫째 어린이집 원장님이 6살 둘째도 함께

다닐 수 있게 배려해 주셨다.


그때는 감사했지만, 이때의 선택이

두고두고 내 발목을 붙잡을 줄 몰랐다.

7살 형아 누나들 사이에서 치이던 둘째는

담임 선생님과도 잘 맞지 않아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첫째는 첫째대로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마음고생을 했고,

그해를 지나고 나서야

나는 뼈저린 후회를 느꼈다.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 모든 후회와 아픔도

결국은 나와 아이들을 성장시켰다는 걸 안다.


아이들은 매일 커갔고,

나도 매일 엄마가 되어갔다.


육아는 늘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지만,

그 안에도 황금빛으로 빛나는

찬란한 순간들이 있었다.


5살, 6살, 7살.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나도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때의 아이들도, 그때의 나도,

서로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음을

오늘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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